"훈장이죠. 한 번 위에 올라왔으니 내려갈 맘은 없습니다".
포수가 투수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가령, 클레이튼 커쇼가 더블A 수준의 포수와 호흡을 맞춘다고 와르르 무너질까? 반대로 싱글A 수준의 투수가 야디어 몰리나와 상대한다고 노히터 투수가 될까? 이런 극단적인 변화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인 프로 수준의 경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포수가 안방을 지키느냐에 따라 투수의 성적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투수가 있다면 포수의 이름도 함께 기록되는 이유다. 팀을 평균자책점 1위로 이끈 포수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유강남(26·LG)이 그렇다.
LG는 지난 시즌 팀 평균자책점 4.30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리그 평균(4.97)보다 훨씬 준수했다. 타고투저의 흐름에서 얼마간 비껴갔다. 선발과 불펜 모두 제 역할을 다했다.
그럼에도 가을 야구에 실패했다. 1982년 프로 원년부터 전후기 시즌제를 포함해 평균자책점 1위팀은 최소 4위로 포스트시즌에 나섰다. LG가 그 기록을 깬 셈이다.
유강남은 지난해 118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7푼8리, 17홈런, 66타점을 기록했다. 타자로서 커리어 하이였다. 마스크를 썼을 때 안정감도 빼어났다. 그가 포수로 출전했을 때 LG의 평균자책점은 4.35. 여전히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지만 방망이가 침묵하며 가을야구와 안녕했다.
유강남으로서는 '팀 평균자책점 1위'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 그는 "확실히 타자로나, 포수로나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팀이 5강에 못 갔다. 내가 이보다 조금 못한 성적을 올리고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면 차라리 기뻤을 것이다. 팀 평균자책점 1위 기록이 뿌듯하긴 해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고 돌아봤다.
그가 팀 평균자책점 1위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결과가 아닌 과정 때문이다. 유강남은 "내게 그 기록은 훈장이다. 그저 벤치에서 나온 사인을 보고 만들어진 결과면 내가 자랑스러워할 게 아니다. 매일 공부했다. 내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라고 미소지었다. 그는 "매년 루틴을 만들어서 경기 전 분석을 착실히 해야 한다.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겼다. 잠을 줄여가면서라도 상대 연구를 꾸준히 할 생각이다"라고 다짐했다.
유강남은 여전히 본인을 주전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선수 생명도 끝난다"는 게 유강남의 각오다. 그는 "감독님이 나를 6번 타순으로 생각하신다는 기사를 봤다. 6번이 잘해야 팀이 강해진다. 클린업트리오와 하위타선의 조화를 잘 이뤄야 한다"라며 "지난해 2군에 다녀온 뒤부터 잘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다. 올해는 그런 시간조차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훈장과도 같은 팀 평균자책점 1위 사수는 당연한 목표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투수들도 그 기록에 대한 뿌듯함이 있다. 위에 올라왔으니 내려가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라며 "포수를 흔히 야전 사령관이라고 하지 않나. 넓은 시야와 경기장 전체를 아우를 능력을 키우고 싶다"고 덧붙였다. /ing@osen.co.kr
[사진] 파파고(미 애리조나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