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회피하지 않겠다."
성추문에 휩싸인 배우 조재현, 최일화, 조민기의 사과문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문구다. '미투(#me too) 운동으로 촉발된 피해자들의 폭로로 성추행 사실이 알려진 이들은 나란히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끈다.
촬영 현장 여자 스태프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알려진 조재현은 폭로 약 24시간 만에 "고백하겠다. 전 잘못 살아왔다"고 공식 사과에 나섰다. 조재현은 "30년 가까이 연기생활하며 동료, 스태프, 후배들에게 실수와 죄스러운 말과 행동도 참 많았다"라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저는 죄인입니다.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라고 사과했다.
이어 조재현은 "전 이제 모든 걸 내려놓겠다. 제 자신을 생각하지 않겠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며 "지금부터는 피해자 분들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겠다. 정말로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조재현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후 출연 중이던 tvN '크로스'에서 하차했고, 교수로 재직 중이던 경성대학교에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난 2009년부터 역임해온 DMZ 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에서도 물러났다.
최일화는 '선 사과 후 폭로'로 눈길을 끌었다. 최일화는 25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날의 과오를 자진해 고백했다. 이후 26일 소속사 DSB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당시엔 그것이 잘못인지도 몰랐던, 가볍게 생각했던, 저의 무지와 인식을 통렬히 반성한다. 현재 맡고 있는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 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와 영화·광고, 세종대 지도 교수직 등 모든 걸 내려놓겠다. 앞으로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최일화의 사과 후 한 피해자는 포털사이트 댓글을 통해 최일화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피해자는 "최일화가 극단 신시에 있을 때 성폭행하고 얼마 후 강제로 여관에 끌고 가려 해 소리 지르며 저항하자 얼굴을 주먹으로 폭행해서 길에 쓰러지게 했다"고 폭로했다. 앞서 "저의 무지와 인식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성추문을 자진 고백했던 최일화는 피해자의 성폭행 폭로에는 오히려 굳게 입을 다물어 의혹을 증폭시켰다.
끝없는 성추행 폭로로 공분을 샀던 조민기는 일주일 만에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조민기는 전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잘못이다"라고 자신의 과오를 반성했다. 조민기는 "저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피해자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제 잘못에 대하여 법적, 사회적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청주대학교 학생들의 연이은 성추행 폭로에, 한 피해자의 강간 미수 폭로까지 이어졌지만 침묵을 지켰던 조민기는 "제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시간들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치다 보니 잠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고 설명하며 "늦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남은 일생 동안 제 잘못을 반성하고 자숙하며 살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처음 성추문이 불거졌을 당시 "명백한 루머"라고 발끈했던 조민기는 일주일의 침묵을 깨고 "거듭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전환, 눈길을 끈다.
침묵을 깬 배우들은 모두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마치 짠듯이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조재현부터 최일화, 조민기까지, 추악한 성추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배우들의 사과문에는 유행어처럼 자신이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말은 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빠졌다.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없는 사과문이 과연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mar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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