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수가 자리에서 내려왔다. 지난 10년 동안 차근차근 쌓아올린 명예와 지위를 단 10일여 만에 잃어버린 셈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미투운동 열기 속, 그를 암시하는 듯한 고발글이 올라온 뒤부터 공식 사과까지, 그는 날개없이 추락했다. 사과문의 진정성까지 의심하는 여론 속에서 '천만요정'이란 애칭은 하늘 저 편으로 날라간지 오래고.
대중은 그에게 냉혹하지만 주변인은 그렇지 않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동정심이 지배적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낯선 만남을 꺼렸다. 술 자리 매너와 여자문제는 한 치 오점도 없었다." 오달수와 함께 작업했던 배우와 감독, 관계자들 상당수가 기자에게 입을 모아 증언한 바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는 지인도 있지만 대다수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까 자제할 뿐이다.
지금 문제가 된 건 25년 전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25년 전 젊은 시절, 그의 일상이 정확히 어땠는지를 아는 이는 거의 없을 터. 아마 본인도 그 때 뭔일들을 하고 다녔는지, 기억에 자신이 없을 게 분명하다. 실제 두 차례의 입장 발표에서도 이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불과 수 년 전 일들조차 "기억 안난다"는 게 이 나라 저명인사들의 청문회 증언법이다. 오달수는 그럴 기회와 자리조차 잡지 못했다. 언론에서 연일 잽과 스트레이트를 두들겨맞다가 '뉴스룸'에서 어퍼컷을 날리니 계속 그로기 상태였다. 장고를 거듭한 침묵이 악수였고 '그런 사실없다'는 1차 입장 발표로 수렁에 발을 디뎠다.
오달수는 사과문에서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모두 저의 잘못이다. 많은 분들께 심려 끼쳐드린 점 진심을 다해 사과드린다”며 “저로 인해 과거에도, 현재도 상처를 입은 분들 모두에게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씀 드린다. 전부 제 탓이고 저의 책임”이라고 스스로도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깊고 쓰린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분들에 대한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는 않았습니다.(중략) 댓글과 보도를 보고 다시 기억을 떠올리고, 댓글을 읽어보고 주변에 그 시절 지인들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인터뷰의 내용과 제 기억이 조금 다른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이하 생략)”
이 시점에서 그의 사과는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연예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면서 오달수와 달리 겉 다르고 속 다른 스타들을 숱하게 봐왔다. 이번 미투운동에서 진짜 정체를 드러내야할 악인들은 따로 있지않을까하는 의구심도 있다. 찌라시 등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소문이 안좋았던 몇몇이 아직 건재한 걸 보면서 혀를 끌끌 찰 뿐이다. 피해자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증명되지 않는 게 성추행이니까. 심지어 피해 사실을 주장했다가 되레 명예훼손이나 무고에 걸려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진짜 문제 있는 인간들은 의혹이 제기된 초반부터의 대처법을 잘 알고 있다. 아예 고발의 싹을 찾아서 밟아버리는 응급 조치를 시작으로 법의 보호막 안에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안전 도피법까지. 이런 점에서 오달수는 지금 대중의 비난과 달리 치밀하거나 계산적이지 못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그는 진정 젊은 날의 순간적 치기에 대해 오락가락했던 것 아닐까싶을 정도다.
어찌됐건 오달수는 tvN 새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극본 박해영, 연출 김원석)에서 하차한 것에 이어 올 여름 개봉을 앞둔 영화 ‘신과 함께2’(감독 김용화)에서도 통편집 된다. 당분간 어떤 작품에서도 그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배우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런 중형을 내리면서 일방적인 여론에만 휩쓸리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의 변명과 주위의 증언도 다시한번 주의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mcgwire@osen.co.kr
<사진> '나의 아저씨'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