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몇 장의 사진과 영상을 봤다. 수술 당시의 팔꿈치를 찍은 것이었다. 끔찍한 사진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취에서 깨어나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도무지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김광현(30·SK)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김광현은 “이 팔로 공을 던질 수 있을까, 예전처럼 던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당시를 떠올렸다.
수술은 잘 됐다. 주위에서는 “어깨에 비해 팔꿈치는 의학적으로 더 정복이 된 부분”이라고 격려했다. 어깨 통증도 이겨낸 성실한 김광현이기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기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큰 수술은 큰 수술이었다. 크고 작은 통증은 수시로 찾아왔다. 김광현은 “물론 재활 프로그램이 순탄하게 진행됐고 딱히 중단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통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그때마다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이처럼 김광현을 괴롭힌 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던질 수 있을까, 예전의 투구폼을 되찾을 수 있을까”라는 어쩔 수 없는 심리적인 문제가 컸다. 지금이야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흔들린 적 또한 여러 번이었다. 많은 이들은 연습경기에서 던진 김광현의 152㎞에 주목하지만, 그 152㎞를 던지기 위해서는 의학적 필름에 잡히지 않는 두려움과 매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에이스는 재활에서도 에이스였다. 강화SK퓨처스파크에서 묵묵히 재활에 매진하며 마운드 복귀를 기다렸다. 인내의 시간,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수시로 위기가 찾아왔지만, 마운드에서 보여준 김광현의 모습 그대로 강인하게 버텼다. 비활동기간이었던 12월과 1월도 반납했다. 괌과 플로리다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그리고 이제 다시 마운드에 선다. SK의 에이스가 1년의 재활을 마치고 복귀하기 일보 직전이다. 예상보다 빠른 페이스다.
김광현은 플로리다 1차 전지훈련 당시 팀 자체 홍백전에 나선 것에 이어 지난 2월 27일 요코하마전에서는 2이닝을 던졌다. 최고 152㎞의 강속구를 던지며 올 시즌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팀 동료들은 “김광현이 수술대에 들어간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수술을 받았다는 자체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농담을 던진다. 그만큼 재활이 잘 됐다. 예전의 역동적인 투구폼, 위력적인 슬라이더도 그대로다. 트레이닝 파트에서는 “이렇게 원래 모습을 빨리 찾기도 힘들다. 김광현의 성실한 자세와 자기관리 덕”이라고 입을 모은다.
1년의 시간 동안 심리적으로도 성숙해졌다. 생각을 할 시간이 많으니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예전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복귀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도 했다. 주위의 헌신에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다. 김광현은 “주위를 좀 더 돌아보고,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고통의 1년이었지만, 그 1년의 경험은 김광현의 야구 인생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또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김광현은 재활을 시작하자마자 머리를 길렀다. 원래 헤어스타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머리를 길게 기를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긴 머리카락에는 김광현이 재활 기간 중 겪었던 힘겨움과 이를 이겨내기 위한 각오가 묻어있다. 이제 그 머리카락과는 작별한다. 소아암 환자를 위해 모발을 기부하기로 했다. 김광현은 “첫 등판이 끝난 뒤 자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좋은 취지와 더불어, 한편으로 이발은 김광현의 재활 여정이 모두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술로 단절됐던 에이스 인생의 2막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07년 데뷔 이후, 김광현은 10년간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였다. 그 기억을 뒤로 하고 새 인대와 함께 앞으로의 10년을 다시 준비한다. 물론 2막에 어떤 연극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더 건강한 몸과 더 성숙해진 마음으로 무장한 김광현이다. 1막 이상의 화려함도 기대할 만하다.
2018년 프리뷰
SK는 김광현의 확실한 재활을 위해 올해는 이닝 제한을 건다는 계획이다.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해 총 110이닝 정도에서 시즌을 마친다. 날이 쌀쌀한 시즌 초에는 오후 2시에 열리는 일요일 경기가 김광현의 책임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월별 휴식일, 팔 상태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투구를 중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 ‘김광현 플랜’도 모두 나와 있다. 올해는 시즌 내내 공헌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김광현도 등판 경기를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각오다. 몸 상태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투구수를 끌어올리는 마지막 과정이 남아있다. 일주일에 한 번 등판, 그리고 주기적인 휴식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 과정만 돌파하면 충분히 위력적인 구위를 기대할 수 있다. 에이스의 복귀가 팀에 주는 심리적 파급력은 상상 이상으로 세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달리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