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스카 한풀이를 했다. 명성에 비해 상복이 없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혔던 게리 올드만이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쥐었다. 게리 올드만의 수상은 확정적이었고 그 만큼 이변 없는 수상이었지만 그는 수상 소감을 말하며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스크린에서 봤던 윈스턴 처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그 만큼 '연기자' 게리 올드만의 존재감 자체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게리 올드만은 5일 오전 10시(한국시간)부터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다키스트 아워'로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경쟁자들은 쟁쟁했다.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를 비롯해 '팬텀 스레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겟 아웃'의 다니엘 칼루야, '이너 시티'의 덴젤 워싱턴 등이 트로피를 놓고 경쟁을 펼쳤다.
앞서 골든글로브 등 주요 영화시상식의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수상 가능성을 높였던 게리 올드만은 이날 역시나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제게 기쁨이 넘치는 상을 주신 것에 대해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해야할 것 같다"라며 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더불어 "난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사랑과 우정 등 정말 멋진 선물을 계속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영화에는 힘이 있다. 사우스런던에서 온 남성이 계속 꿈꾸며 계살게 해줘서 고맙다. 20년이 지나 오스카 상을 받게 됐지만 기다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남겼다. 생애 첫 수상인 만큼 베테랑 연기자임에도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더불어 "윈스턴 처칠 총리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하며 그에게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선사한 처칠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띄웠다.
영국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맹활약한 게리 올드만은 '시드와 낸시', '레옹', '제5원소', '주홍글씨', '다크나이트' 등 다양한 장르물과 캐릭터를 선보이며 시네필과 대중의 사랑을 골고루 받았다. 그는 어떤 작품에서는 목숨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선량하고 정의롭다가도 다른 영화에서는 소름끼치게 악인으로 돌변하는 등 그 이중성이 특히 돋보이는 배우였다.
그러나 메이저 시상식과 인연이 거의 없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날 이전, 제 84회 시상식에서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를 통해 딱 한 차례 후보 지명된 것이 전부였다.
이런 게리 올드만이기에 이번 수상은 본인에게나 팬들에게나 큰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런 영광을 안게 해 준 처칠도 남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
영화 속 게리 올드만은 분장의 힘을 넘어(이번 아카데미에서 분장상도 받았지만) 완벽한 디테일로 처칠 그 자체를 연기했다는 평을 들었다. 게리 올드만은 처칠이 덩케르크 철수를 결정하기 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그의 인간적인 면모 등 다양한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인생의 굴곡을 통해 빚어진 다혈질적인 성격, 그 속의 유머러스함과 부딪히는 신념, 용기. '역사 속 위대한 인물'로 박제될 수 있는 처칠에 숨을 불어놓은 게리 올드만은 확실히 처칠 그 자체였다.
실제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극 중 배우가 게리 올드만인지 몰랐다는 반응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존 인물에 대한 아카데미의 사랑도 다시한 번 엿볼 수 있었다. /ny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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