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에 대한 성추문 폭로는 다시금 '감독과 그 감독이 만든 영화는 별개로 봐야하는가'란 관객들의 오랜 질문을 상기시킨다. 감독의 명성이 성추문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를 이미 외국에서는 로만 폴란스키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영원히 딸 성추행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우디 앨런과 적극적인 '미투' 운동 움직임으로 인해 범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이현주 감독, 그리고 이제는 함께 작업한 여배우들의 폭로로 인해 성추문 나락으로 떨어진 김기덕 감독이 있다. 특히 김기덕 감독 같은 경우는 자신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 조재현과 함께 논란에 휘말려 더욱 충격을 안긴다.
MBC 'PD수첩'이 6일 방송을 통해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이라는 주제로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에 대해 폭로했다.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에 대한 여러 제보 및 증언을 보도한 것. 이날 익명으로 나선 여배우들은 과거 김기덕 감독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구체적인 정황을 폭로했다. 그들은 "겁탈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옷을 벗기고 내가 온몸으로 반항했더니 내 따귀를 10대는 때렸던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충격적인 폭로는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 그리고 조재현의 매니저까지 합세해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휘둘렀다는 것. "그들 사이에 경쟁이 붙었다. 자기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했다"란 피해자의 발언은 믿기 힘들 만큼 끔찍한 폭로였다.
이에 ‘PD수첩’ 측에서는 김기덕 감독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직접 마주해 입을 여는 대신 제작진 측에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그는 "미투운동이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확인 없이 공개되어 진실이 가려지기 전에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그 후에는 평생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는 내용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어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고 여자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일방적인 관심으로 키스를 한 적은 있다.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만나고 동의 하에 육체적 관계를 가진 적은 있다.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한다"라고 해명,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앞서 조재현은 배우 최율의 공개 저격 등 여러 피해자들의 폭로들로 인해 성추행 의혹에 휩싸였고, 결국 이를 인정하며 자숙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는 지난 달 발표한 공식 사과문을 통해 "잘못 살아왔다. 30년 가까이 연기생활하며 동료, 스태프, 후배들에게 실수와 죄스러운 말과 행동도 참 많았다. 저는 죄인이다.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전 이제 모든 걸 내려놓겠다"라고 전한 바다.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은 영화계의 대표적인 연출가-페르소나로 불렸다. 그들은 '나쁜 남자'를 비롯해 '악어', 야생동물 보호구역', '뫼비우스' 등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렇듯 조재현은 김기덕 감독의 초기 작품들에 주로 출연하며 김기덕의 세계관을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나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창녀로 만든다'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비판이 들끓었던 영화였다. 주연배우 서원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를 촬영하며 영혼이 다쳤다고 털어놓기도. 그러나 영화적 완성도와 해외 영화제에서의 인정, 김기덕 감독만의 남다른 개성으로 일부 시네필들에게는 사랑받는 수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내 영화사에서 분분한 평을 얻고 있는 '나쁜 남자'는 성추문으로 얼룩지며 그나마 있었던 호평의 의미마저도 퇴색시키고 있다. 폭로가 사실이라면 여자를 객체화시키며 학대했던 영화의 내용처럼 실제 이들은 누군가에게는 '나쁜 남자'가 됐다. 그리고 이들의 조합은 더 이상 보기 쉬울 것 같지 않다. 감독과 페르소나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nyc@osen.co.kr
[사진] MBC 화면캡처, 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