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소지섭이 구구절절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기자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성실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말을 하다가 갑자기 문득 다른 생각이 튀어나와 그것에 대한 말을 이어나가는 쾌활한 성격은 아닌 듯 보였다. 말주변 없이 무뚝뚝한 스타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8일 오전 서울 삼청동에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를 통해 아버지로 변신한 소지섭을 만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편안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는 지난해 7월 개봉한 액션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 이후 로맨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8개월 만에 스크린에 컴백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세상을 떠난 아내가 1년 후 기억을 잃은 채 남편과 아들 앞에 나타나 다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판타지 작품이다. 동명의 일본 소설 및 영화를 리메이크 했지만 한국적으로 각색해 다른 결말을 담았다.
소지섭은 이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사로도 이미 났지만 처음에 제가 이 작품의 출연을 고사했던 이유가 있었다”며 “실제로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초등학교 아들을 둔 아이 아빠처럼 보일지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라고 출연을 고사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소지섭은 손예진이 먼저 아내 역할로 캐스팅됐고 마음이 따뜻한 이장훈 감독의 연출 방향에 마음을 빼앗겨 다시 생각을 바꿨다고 털어놨다. “감독님이 ‘사랑이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느끼는 것이 아닐까?’라고 하시며 따뜻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하신 게 마음을 이끌었다. 함께 해보니 감독님 덕분에 사랑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소지섭은 극중 초등학교 1학년 아들 지호를 둔 아빠 우진으로 분했다.
이에 소지섭은 “(아들役)지호가 남자 아이다보니 제가 현장에서도 몸으로 놀아줬다. 만나자마자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금세 대화 주제가 바뀌고 놀아주는 게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있더라”고 아이와 케미스트리가 잘 맞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하지만 다음 작품(영화는)은 지금의 이미지와 겹치지 않게 조금 센 것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손예진과 부부로 분한 소지섭은 “손예진과 호흡을 맞춘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예전에 드라마를 같이 한 적은 있었지만 너무 어릴 때라 기억도 안 났다”며 “막상 연인으로 호흡을 맞춰 보니 정말 잘하더라. 완벽주의자다. 본인이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계속하는 스타일이다. 나중에 완성본을 보니 그 분이 생각한 게 뭔지 정확히 알겠더라”고 극찬했다.
영화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의 멜로 작품을 통해 많은 관객을 설레게 했던 손예진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통해 멜로 퀸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손예진과 소지섭은 지난 2001년 방송된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 이후 17년 만에 다시 한 번 연기 호흡을 맞췄다.
그러면서 소지섭은 “저보다 손예진에게 반사판이 좀 많이 가긴 했다(웃음). 하지만 전 신경 쓰지 않았다(웃음). 질투한 것도 아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앞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이 감독은 손예진에게 좀 더 많은 반사판이 사용돼 소지섭이 질투했다는 농담을 던진 바 있다. 이에 소지섭은 “제가 무슨 그런 걸로 질투를 하냐”며 웃었다.
소지섭은 “저보다 같이 작업을 하는 배우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들의 마음속에 ‘소지섭이라는 배우와 같이 해서 되게 좋았다’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며 “저는 내가 잘되는 거 보다 저와 같이 했던 배우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인기나 돈을 좇진 않는다. 그런 것들이 더 많아지는 걸 별로 원치 않는다. 이젠 ‘내가 이길 거야’라는 생각도 안 한다”고 남을 배려하는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이젠 제 위치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 저 혼자 (1인)소속사를 시작할 때는 혼자 있으니까 왠지 모를 불안감도 있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하지만 몇 년 후부터,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겠지만, 부담감이 사라졌다. 이런 생각을 가진 지 좀 됐다.” /purplis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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