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일본 3대 신문의 하나인 아사히(朝日)에 등장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4월 30일 ‘텐세이진고(天聲人語)’라는 칼럼난에서 김성근이라는 ‘근성의 지도자’를 재조명했다. ‘한국의 야신(韓國の野神)’이라는 제목을 단 이 칼럼은 김성근 전 감독이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의 초빙 코치로 선수 육성의 꿈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근황을 전했다. 김성근 전 감독은 올해부터 호크스 구단 왕정치 회장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2군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텐세이진고’는 아사히신문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칼럼으로 논설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집필한다. 예전엔 재일교포 장훈(張勳)이 일본 프로야구 최초로 3000안타를 달성 했을 때(1980년 5월 30일자)나 프로바둑기사 조치훈(趙治勳)이 일본 유명 기전인 명인전에서 오다케 히데오 9단에게 3연패 후 4연승 뒤집기로 4차 방어에 성공했을 때(1984년 11월 17일), 한국 최고의 가수 조용필(趙容弼)이 도쿄에서 공연을 가진 뒤(1987년 3월 2일)에도 칼럼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이 칼럼에 등장했던 한국인들은 ‘반역아(反逆兒)의 3천 안타’(장훈), ‘혼, 그 자체’(노래가 그렇다는 뜻. 조용필) 등 그 인물을 상징하는 제목으로 조명을 받았다.
그야 어찌됐든 김성근 전 감독이 유명세로만 따진다면 앞서 언급한 인물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텐데도 굳이 칼럼에서 다룬 것은 그의 끊임없는 야구에 대한 도전 때문일 것이다.
그 칼럼을 요약, 정리하면 이렇다.
“야구를 사랑하는 미국 작가 로저 엔젤(Roger Angell)은 ‘재미와 깊이, 미래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면서 (야구를) 계속 배워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올 시즌 소프트 뱅크에 코치로 온 김성근 씨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 야구계에서는 ‘야신(野神)’으로 불리는 명지도자이다. 7개 구단 감독으로 1000번이 넘는 승리를 거두었고 3차례나 정상에 섰다.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숱한 괴로움을 겪었고 번롱(翻弄) 당했지만 그는 ‘곤란한 경우나 실패를 사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원동력은 선수의 인생을 담당한다는 사명감이 모든 것’이라고 했다.”
칼럼은 ‘약한 팀을 맡아 타협 없는 연습과 치밀한 전략으로 강호로 길러낸다. 그것이 야신류(野神流)의 철학이다. 아시아도 좋지만, 메이저리그의 양키스를 쓰러뜨릴 수 있는 팀으로 키우고 싶다’는 김성근 전 감독의 포부를 전했다. ‘75세의 꿈과 여행은 계속된다.’고 매듭지으면서.
김성근 전 감독은 비록 한화 구단에서 실패했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도전적인 야구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이런 도전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장훈이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3000안타 대기록을 세웠을 때, 아사히신문의 칼럼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왕정치와 그를 비교를 하면서 ‘역동적이며 굳세고, 분노가 실린 어깨로 투지를 뿜어내는’으로 묘사한 대목이 기억에 남아있다. 재일 한국인으로 핍박과 괄시를 받아온 그의 처지를 빗대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김성근이라는 야구 지도자가 걷는 길에는 열정이 살아 있다고 해야겠다. 그의 열정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