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천지개벽이다. 이게 진짜 한화 마운드가 맞을까. 눈을 씻고 비벼 봐도 맞다. 팀 평균자책점 2위, 놀랍게도 그 팀이 바로 한화다. 지금 페이스라면 전신 빙그레 시절이었던 지난 1992년 이후 무려 26년만에 팀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도 한 번 노려봄직하다.
한화는 14일 현재 팀 평균자책점 4.54로 이 부문 2위에 올라있다. 1위 SK(4.46)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직 39경기밖에 소화하지 않은 시즌 초라는 것을 감안해도 놀라운 일이다. 가을 야구에 실패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화의 팀 평균자책점 순위는 6·8·8·8·8·9·9·9·9·8위. 매년 하위권이었던 한화 마운드에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 몇 년간 한화 마운드는 지쳐있었다. 박정진·권혁·송창식·이태양·장민재·김민우 등이 크고 작은 부상 및 구위 저하에 시달리고 있었다. 외인 투수 키버스 샘슨, 제이슨 휠러가 가세했지만 물음표가 붙어있다. 모두가 한화를 약체로 꼽았고, 그 이유로 마운드를 지목했다. 한화 내부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마운드 복구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다르다. 샘슨-휠러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빠른 변화로 적응을 마쳤다. 전력 외로 평가절하된 안영명과 송은범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서균·박상원·박주홍 등 새얼굴들도 불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베테랑 배영수, 마무리 정우람이 선발과 불펜의 중심을 잡아줬다. 김재영도 3선발로 자리매김했고, 이태양·장민재도 롱릴리프로 빈틈을 잘 메우고 있다. 신구조화가 잘 어우러졌다.
투수 출신 한용덕 감독은 선수들에게 공격적인 투구를 강조했다. 캠프 때부터 "맞아도 좋으니 도망가는 투수는 쓰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안영명과 이태양이 시범경기 때 이와 같은 이유로 2군에 갔다. 장민재도 지난달 7일 수원 KT전 1군 등록 첫 날 승부를 과감하게 들어가지 못하자 한용덕 감독은 면담을 통해 "맞더라도 승부를 하라"는 메시지를 주며 당일 2군행을 통보했다.
한 감독의 거듭된 주문에 한화 투수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하고 있다. 기록으로 잘 나타난다. 지난달 20일부터 최근 17경기에서 한화의 9이닝당 볼넷 허용은 2.29개로 10개팀 중 가장 적다. 같은 기간 이닝당 투구수도 17개로 최소 3위. 과감한 승부로 효율적인 투구를 한다. 불펜 비중이 높지만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되고 있는 이유다.
한 감독이 큰 틀을 짜고 운영한다면 세부적인 지도 및 관리는 송진우 투수코치의 몫이다. 한화 투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송진우 코치님 덕분이다"는 말을 한다. 신뢰가 대단하다.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직접 캐치볼도 하며 몸과 마음으로 교감을 나눈다. 선수 개개인의 투구폼을 건드리지 않고 존중하며 몇 가지 투구 포인트만 짚어주는 식이다.
송은범의 투심 투수 변신, 휠러·서균의 체인지업 장착, 샘슨의 디딤발 위치 변화가 적중했다. 또한, 연투 또는 개수가 많았던 구원투수들이 쉬는 날에는 스파이크도 신지 않게 하는 확실한 휴식 관리도 빛을 발하고 있다. 송진우 코치는 "선수의 공을 내가 가로채고 싶지 않다. 선수들 스스로 배우고,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고 말했다.
선수·코치 시절을 함께한 한 감독과 송 코치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도 큰 힘이다. 감독과 투수코치 사이에서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화는 그렇지 않다. 한화 관계자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같을 순 없다. 각자 보는 시각에 차이는 있겠지만 감독님이 송 코치님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감독님도 투수코치를 오래 하면서 겪어온 애로사항을 잘 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소통이 잘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는 지난 1986년 빙그레로 창단한 이후 팀 평균자책점 1위가 한 번밖에 없다. 지난 1992년 빙그레 시절 팀 평균자책점 3.68로 이 부문 1위에 오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당시 한용덕 감독이 2.99, 송진우 코치가 3.2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2년 이글스의 평균자책점 1위를 이끈 투수들이 26년 만에 지도자로 다시 한 번 평균자책점 1위에 도전한다. /waw@osen.co.kr
[사진] 대전=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