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기술을 팔아서 밥을 먹는 직업선수를 초청할 필요가 없다.”
1922년 미국 메이저리그 선발팀이 사상 처음으로 조선 땅을 밟게 되기 전 조선체육회 이사회 석상에서 고루한 이사들이 초청을 거부하는 명문으로 내세운 말이다. 메이저리그 선발팀은 일본을 거쳐 그해 12월 8일 경성(서울) 용산철도국운동장에서 조선선발팀과 맞대결을 펼쳐 23-3으로 크게 이겼다.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같은 싱거운 경기였지만 걸음마 단계였던 한국야구로서는 큰 경사였다.
당시 메이저리그 선발팀 초청은 야구선수 출신 이원용(李源容. 1896~1971)이 사비를 털어서 성사시켰다. 이원용은 조선체육회의 반대로 공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돈을 빌려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선발팀 헌터 감독을 만나 며칠간 조른 끝에 마침내 조선 땅에서 한 경기를 치르기로 약속 받았다.
이 같은 메이저리그 선발팀 초청 비화는 1956년에 출간된 한국 최초 『공인 야구규칙』서에 이원용이 한국야구약사(略史) 가운데 기술해놓은 것이다.
이원용은 서울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야구 초창기 명1루수였고, 심판으로도 활약했던 인물이다. 1920년 조선체육회 발기인 및 창립 주역이었던 그는 1933년에 『조선체육계』라는 스포츠 잡지를 발간했는가 하면 1930년대 초에는 조선일보 기자를 역임하는 등 체육인이자 언론인으로 유명했다.
필자가 최근 한 경매업체를 통해 손에 넣은 『공인 야구규칙』서는 1956년 10월 10일 대한야구협회가 발행한 것으로 메이저리그 규칙집과 일본 공인야구규칙서를 본 딴 온전한 규칙집으론 최초의 것이다. 대한야구협회 이홍직(李鴻稙) 제5대회장 재임 시기에 이루어진 이 규칙집은 대한야구협회 창립 10주년 기념사업으로 당시 원로 야구인이었던 이원용에게 의뢰, 40일 만에 완성을 본 것이라고 서문에 밝혔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규칙집을 표본으로 삼은 만큼 메이저리그식 야구규칙 분류법에 충실히 의존한 이 『공인 야구규칙』은 짙은 청색 표지에 가로 9, 세로 17cm 크기로 표지에 발행 연도인 ‘4289, 1956’을 새겨 단기와 서기를 같이 표기했다. 본문 215쪽, ‘심판원 제군에게’ 22쪽, ‘한국야구약사’ 15쪽 등 모두 252쪽 분량이다.
책의 판형은 일본 『공인 야구규칙』과 똑같다. 이원용이 쓴 이 책의 서문과 대한야구협회 이사 금철(琴澈)이 쓴 발간사를 보면 8· 15 민족해방 이후 1946년에 대한야구협회를 창립한 뒤 이원용이 이영민(李榮敏. 1905~1954)과 합작으로 60쪽 분량의 팸플릿 형태의 야구규칙서를 발간한 적은 있으나 대한야구협회가 이처럼 제대로 된 『공인 야구규칙』을 펴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에 앞서 1947년 8월에는 인천 출신의 야구인 최상준(崔相俊)이 144쪽 분량의 문고판 크기의 『야구규칙』을 발간했으나 그 형태가 메이저리그식은 아니었다.
이번에 찾아낸 『공인 야구규칙』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나 KBO에도 없다. 야구박물관 설립에 대비, 현재 KBO 아카이브센터에 보관 중인 야구 자료 3만여 점 가운데 프로 출범(1982년) 이전 대한야구협회가 발행한 규칙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69년이다.
오래된 일본 『공인 야구규칙』(1959년)에 따르면 일본에서 프로, 아마 통일 규칙서가 발간된 해는 1956년 3월로 대한야구협회 최초 『공인 야구규칙』 발행일자 보다 7개월 남짓 빠르다.
1956년도 판 대한야구협회 『공인 야구규칙』은 야구규칙의 변천과 전개과정을 가늠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보인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