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특화' 자리 없던 정훈의 1군 정착 키워드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18.07.07 06: 31

다양성과 특화. 대척점에 있는 두 단어이지만, 롯데 자이언츠 정훈(31)에게는 이 두 가지 단어가 현재 1군에 정착하게끔 만드는 키워드다.
정훈의 공식 등록 포지션은 내야수다. 하지만 올 시즌 정훈은 내야 뿐만 아니라 외야까지 범위를 넓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훈이 올 시즌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수비 포지션은 중견수다. 중견수로 104이닝을 소화했다. 그 다음으로 소화한 포지션이 1루수(57이닝)이고 2루수(14이닝), 3루수(13이닝)로도 경기에 나섰다. 
이렇듯, 현재 정훈의 매력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앤디 번즈의 영입으로 주전 2루수 자리에서 밀렸고 지난해부터는 중견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지난해 마무리캠프에서는 본격적으로 외야수 전향을 준비했지만, 탄탄해진 외야 자원으로 인해 올해 스프링캠프에서는 내야로 돌아와 3루수로 훈련을 받았다. 

이제 '야수' 정훈의 정체성은 모호해진 것이 사실이다. 냉정하게 정훈의 붙박이 수비 포지션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확실한 자리가 없던 정훈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되려 기회로 만들었다.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팀에 갑작스런 공백이 생겼을 때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 그 역할을 제대로 소화했다. 민병헌의 부상 때는 중견수를, 이대호와 채태인의 부재시에는 1루수를, 2루수 앤디 번즈의 초반 타격 부진 때는 2루수를, 3루수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3루수로 투입되며 공백을 최소화시켰다. 다양한 포지션에서 수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빠르게 적응했다. 팀 내에서도 수비 센스만큼은 으뜸으로 평가받는 정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확실한 수비 포지션이 없는 야수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훈도 한계점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원우 감독을 비롯한 1군 코칭스태프들이 확실한 자리가 없는 정훈을 쉽사리 놓지 못한 이유는 바로 타석에서의 능력 때문이었다. 지난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고, 이따금씩 터뜨리는 한 방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출루 능력까지 뛰어난 편이다. 
하위 타선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채태인, 이병규를 영입하면서 좌타 대타 요원에 대한 갈증은 해소했지만 우타 대타 자원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했다. 정훈은 두 가지 고민 해결의 접점에 있던 선수였기에 미련을 놓지 못했다. 
수비에서 다양성을 보여준 정훈이었지만, 이에 타석에서는 반대의 전략을 택했다. 능력을 특화시키는데 집중했다. 올 시즌 타율 2할9푼4리(102타수 30안타) 4홈런 15타점을 기록하면서 백업 자원으로는 충분히 준수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여기에 좌투수 상대 능력을 특화시킨 정훈이었다. 올해 좌투수 상대로 타율 4할7푼4리(38타수 18안타) 3홈런 7타점 출루율 5할4푼5리 장타율 0.816 OPS는 1.361에 달하는 기록을 만들었다. 
지난 6일 사직 KT전은 정훈의 멀티 포지션 능력과 좌투수 상대 스페셜리스트의 면모를 확인한 경기였다. 정훈은 KT 선발 좌완 금민철을 상대로 2번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1루수로는 3회초 무사 1,2루에서 이해창의 희생번트 시도 때 과감한 전진과 정확한 송구로 2루 선행 주자를 3루에서 아웃시켰다. 그리고 타석에서는 4타수 4안타 2타점 활약으로 팀의 11-9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었다. 경기 후 정훈은 "좌완 투수 상대로만 경기에 나가다보니 준비하는 마음이 오히려 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칫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던 커리어의 위기였다. 그러나 정훈은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다양한 포지션 소화력과 특화된 타격 능력을 바탕으로 이제 1군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소금 같은 존재로 거듭났다. /jh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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