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루 관중석을 가득 채운 팬들로서는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경기였다.
SK는 11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4-18로 크게 졌다. 올 시즌 최다 실점을 하고 무너지며 전날 마산 NC전 역전승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2위 자리를 지키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주말을 맞이해 폭염을 뚫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좋은 선물을 하지 못했다.
SK는 마산 2연전에서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선수단이 인천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오히려 전날 경기가 취소된 KIA가 일찌감치 인천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그 때문인지 양팀 선수들의 컨디션 차이는 극명해 보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는 핑계거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경기력 난조를 선보였다.
1회부터 실책, 그리고 수비에서 보이지 않는 플레이가 나오며 경기 분위기를 내줬고 선발 박종훈도 몸에 맞는 공을 자주 내주는 등 흔들렸다. 타선도 초반 따라갈 수 있는 기회에서 상대 선발 양현종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타선은 체력과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모습이었다. 양현종 이후 상대 신진급 투수들을 상대로도 전혀 물고 늘어지는 투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에 벤치의 투수 교체도 상식과는 벗어나 있었다. SK는 2-6으로 뒤진 4회 김성현의 솔로홈런으로 1점을 따라갔다. 아직 5번의 공격 기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3점은 포기하기 이른 점수였다. 사실상 따라갈 수 있는 마지막 승부처였다. 이에 SK도 이날 투구 내용이 다소 좋지 않았던 선발 박종훈을 5회에 내리고 불펜 가동에 들어갔다.
가장 믿을 만한 투수들인 좌완 김태훈과 우완 윤희상은 전날 투구수가 많아 이날 활용하기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두 투수의 전날 희생으로 휴식 시간을 번 다른 투수들이 있었다. 베테랑 채병용 박정배 박희수, 그리고 통산 KIA전 5경기에서 단 1피안타, 평균자책점 0으로 강한 면모를 선보인 우완 정영일도 가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트레이 힐만 SK 감독의 선택은 가용 인원 중 가장 경험이 적은 좌완 남윤성이었다.
KIA 타선이 좌타 라인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감안한 교체로 보였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과정적으로 순리에서 벗어나는 교체라는 지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3점차에 5회라면 일단 팀이 가장 믿을 만한, 그리고 경험이 있는 투수들을 먼저 투입해 버티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네 명의 가용 인원이 있기 때문에 오밀조밀하게 교체가 가능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 승부수가 실패하면 그때 투수를 아끼기 위해 패전조를 올려 출구를 찾는 전략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힐만 감독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가뜩이나 이날 1군에 등록된 남윤성으로서도 부담스러운 등판이었고, 결국 5회 1점, 6회 2점을 내줬다. 타선도 추격하지 못해 경기 분위기가 KIA쪽으로 순식간에 넘어갔다. 그 후 승부처에서 썼어야 할 채병용 박희수 박정배는 7회부터 마운드에 차례로 올랐다.
승부는 걸어보지도 못하고, 이날 1군에 올라온 투수에게는 부담을 남겼으며, 결국 이미 넘어간 경기에서 무의미하게 투수만 소모한 경기였다. 만약 순서가 바뀌었다면 차라리 납득할 만한 대패였다. 져도 이렇게 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긴 경기였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