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를 달고 15년 동안 한국을 빛냈던 정진선(34, 화성시청)이 피스트에서 마지막 칼끝을 겨눴습니다.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금메달만큼 충분히 값진 동메달이었습니다.
정진선, 박상영(울산시청), 권영준(익산시청), 박경두(해남군청)로 짜인 남자 에페 대표팀은 지난 22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센드라와시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에페 단체전 준결승서 중국에 41-45로 져 동메달을 땄습니다.
값진 메달이었지만 한국 선수단의 분위기는 침통 그 자체였습니다. 2006 도하 대회부터 3연패를 해온 패권을 지키지 못한데다가 '맏형' 정진선이 은퇴 경기서 웃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진선은 경기 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로 인해 팀에 너무 큰 피해를 줘서 죄책감을 느낀다.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맏형으로서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미안하다. 감독님과 모든 스태프들에게도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고 연신 사과를 거듭했습니다.
또 정진선은 "마지막 경기라 부담이 됐다는 것도 다 핑계다. 결과적으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게 패배의 원인이 됐다"고 자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피스트를 누빈 후배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자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너무 감사했고, 좋았고, 미안하고, 안타깝다."
정진선은 현역 마지막 무대에서 고대하던 아시안게임 단체전 4연패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단체전 3연패와 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 동메달,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 이번 대회 개인전-단체전 동메달, 다른 국제대회서 딴 무수히 많은 메달은 충분히 차고 넘치는 커리어입니다.
정진선의 에이스 바통을 이어받게 된 '할 수 있다' 박상영 선수도 "진선이 형은 제가 대표팀에 있었던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에이스 역할을 해왔다. 항상 짐이 많았고 누구보다 많은 활약을 했었는데 형의 마지막 경기라 부담이 많이 됐다. 진선이 형은 우리에게 미안해 할 필요 없다. 진선이 형 덕분에 진 경기보다 이긴 경기가 더 많다"라며 위로 했습니다.
국민들도 "그동안 국가대표로서 정말 많은 노력과 수고로 임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동메달도 충분히 자랑스럽습니다"라며 힘을 실었습니다.
정진선 선수, 마지막 태극마크 무대여서 더 아쉬울 테지만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박상영 선수의 말대로 당신 덕분에 15년 동안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정진선 선수는 이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태극마크는 내려놓지만 소속팀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갑니다. 9월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클럽을 동탄에 개관합니다.
2004년 태극마크를 처음으로 단 순간부터 15년 동안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았던 정진선 선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dolyng@osen.co.kr
[사진]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