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큰별’이었던 영원한 맨발의 청춘 故신성일. 아내 엄앵란의 눈물 속 배웅을 끝으로 그는 영면에 들었다.
7일 경북 영천시 괴연동 성일가에서는 故신성일의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는 아내이자 배우인 엄앵란, 아들 강석현, 딸 경아, 수화 씨를 비롯한 유족들과 고인의 지인들, 그리고 팬 500여 명이 참석했다. 사회는 배우 안재욱이 맡았다.
추도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 추도사와 추도 공연, 유족대표 인사, 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추도식이 열린 곳은 고인이 생전 직접 건축하고 살았던 장소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성일가 앞마당에 묻혔다.
고인의 아내 엄앵란은 빈소나 발인식 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바다. 지난 6일 열린 故신성일의 영결식에서 엄앵란은 “이 세상 떠나면서 나는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가 나보고 왜 안 우느냐고 하는데 울면 그 망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고 하더라. 마음이 아파서 억지로 지금 안 울고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엄앵란은 추도식에서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가수 김명상이 고인의 대표작인 ‘별들의 고향’의 삽입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을 부르자, 엄앵란은 눈물을 보였다. 유족과 팬들 또한 고인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안재욱은 “고인은 우리나라의 영화뿐만 아니라 뮤지컬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며 고인의 업적을 알렸다. 추도식이 끝난 후, 안재욱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성일 선생님 추도식 사회를 보며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아프지 않고 편안히 잠드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추모의 뜻을 밝혔다.
추도식을 끝으로 故신성일은 영원한 별이 됐다. 故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25분 1년 반 동안의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고인은 1937년생으로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 잘생긴 외모와 중후한 목소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고인은 '맨발의 청춘', '동백 아가씨', '5인의 건달', '춘향', '눈물 젖은 부산항', '별들의 고향' 등 1960~80년대 수많은 청춘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국민스타가 됐다.
1964년 엄앵란과 결혼한 후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던 故신성일은 지난해 폐암 투병 중이라는 근황을 전해 대중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해 폐암 3기를 진단 받은 故신성일은 병을 발견한 이후 치료에 전념했고, 지난 10월 4일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달 만에 병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 yjh030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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