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V4 스토리] ② ‘봄의 인내’ SK 베테랑 타짜, 2018년 가을을 수놓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11.17 14: 15

그들은 익숙한 인천의 덕아웃에 있지 않았다. 그들의 자리는 강화SK퓨처스파크의 한 구석이었다. 농담을 주고받는 일상은 여전했고 또 유쾌했다. 하지만 주위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2018년 5월, SK의 베테랑 선수들인 박정권(37)과 김강민(36)은 완연한 봄 기운 속에서도 봄을 느끼지 못했다.
영원히 SK 전력의 한 축이 될 것 같았던 두 베테랑은 올 시즌 초반 시련을 겪는다. 두 선수 모두 1군 엔트리에 안착하지 못한 채로 시즌을 시작했다. SK의 왕조가 설립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KBO 리그를 감싸는 세대교체의 바람 속에서 젊은 선수들이 두 선수의 자리를 꿰찼다. 예전의 자리를 금방 되찾을 것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어쩌면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 양상이었다.
나름대로 차분하게 기회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그 기회가 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기운이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 경험 많은 베테랑들은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을 알고 있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 번의 기회는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가 2018년 포스트시즌의 성과로 이어졌다.

김강민이 먼저 강화를 탈출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무장한 김강민은 1군 코칭스태프가 자신을 안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퓨처스리그 39경기에서 타율 3할5푼1리, 6홈런, 21타점을 기록했다. 다시 올라온 1군에서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며 다시는 2군에 내려가지 않았다. 김강민은 “2군에 내려갈 때 이 상황을 인정하고 내려갔다. 트레이닝 파트에서의 조언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떠올린다.
‘가을 사나이’ 박정권의 포스트시즌 합류는 차라리 극적이었다. 6월에 짧게 1군을 경험한 뒤로는 시즌 막판까지 1군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화에 있는, 혹은 강화를 방문한 구단 관계자들도 “내년을 보고 포기하지 말자”라고 위로했을 정도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박정권의 포스트시즌 엔트리 합류를 확신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레 노수광이 불의의 부상을 당했고, 좌타자를 찾다보니 박정권이 선택을 받은 것이다.
모처럼 가을 냄새를 맡은 두 선수는 “가을야구는 별개의 무대”라는 명제를 명쾌하게 증명했다. 두 선수 모두 고비 때마다 맹활약하며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뭔가 하나를 해줄 것 같은 기대감을 스스로 만들었다. 앞에 나서지는 않지만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팀 분위기를 한 곳으로 묶는 임무도 잘 수행했다.
김강민은 포스트시즌 최고의 선수였다. 플레이오프 5경기에서 타율 4할2푼9리, 3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리드오프 몫을 잘 수행하며 팀을 이끌었다. 6경기에서 5타점을 수확했다. 가장 큰 근심거리였던 노수광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웠다. 수비에서도 명불허전이었다.
박정권은 한 방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가장 중요했던 시리즈 1차전에서의 결승타가 모두 박정권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쳤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상대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을 무너뜨리는 결승 홈런을 쳐내며 가을 타짜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김강민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세리머니를 할 때 홀로 잠시 덕아웃에 들어왔다 다시 나갔다. 당시 김강민은 “허리가 아프다. 서 있을 힘도 없다”고 웃었다. 박정권도 흥분하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우승을 즐겼다. 이제는 주연보다는 조연의 마음으로 시리즈를 바라보는 느낌이 묻어났다. 중심이 되려는 생각을 버린 두 선수가 시리즈의 중심에 섰으니 이 또한 역설적인 일이다.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