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판에 FA(자유계약)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9년이다. 20년 세월이 훌쩍 흐른 2019년 현재, 그 제도는 구단 간 과당 경쟁에 따른 선수 몸값 폭등과 이른바 ‘먹튀’ 논란 등 숱한 부작용을 낳았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수십, 수백억 원의 거액을 한꺼번에 챙긴 선수들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 됐고, 입지전적인 인물로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구단들은 여전히 연간 수백억 원의 적자 구조신세다. 이는 한국프로야구의 어두운 그늘이자 숨길 수 없는 얼굴이다. 그에 따라 KBO가 FA 상한선 책정 등을 시도했지만 좌절됐다.
2018 시즌을 마치고 FA 선언을 한 15명 가운데 계약을 마친 선수는 효용성과 미래 가치를 인정받은 4명에 그쳤다. 선수들은 구단들의 평가가 인색하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구단들은 좀체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11명이나 해를 넘겼다. 그들은 이적은 고사하고 원 소속 구단과 물밑 줄다리기에 신경을 소모하고 있는 중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구단들이 양의지(32. NC)나 최정(32. SK) 같은 초중량급 선수가 아니면 더 이상 헛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FA 시장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흐름이 고착화 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겠다.
이와 관련, 한화 이글스 구단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화는 내야수 송광민(36)과 외야수 이용규, 최진행(이상 34) 등 모두 3명이 FA 신분이지만 구단과 협상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평행선을 걷고 있다.
예전에는 FA 선수에 대한 계약이 ‘과거 공로에 대한 보상 또는 포상’이 짙었다면, 이제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아니, ‘바뀌어야 한다’고 한화 구단은 주장한다.
박종훈 한화 단장은 “지금 KBO리그의 FA 인식이 너무 잘못돼있다. FA를 선언하면 무조건 대우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많이 바꿔야 하고, 진행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선수들도, 구단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 상황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단장은 “구단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자 한다. 선수들은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구단들도 과거(FA 계약행태)와 결별해야 한다. 야박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작은 해야겠는데, (선수들이) 많이 양보하지 않으면 계약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대우 조건이 좋지 않다.”고 정황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바깥에서 볼 때 FA 선수에 대해 예전에는 구단들이 ‘보상’에 방점을 찍고 계약을 했지만 앞으로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가능성이 크면 많이 주겠지만, 한계가 드러났다는 판단이 서면 많이 못주겠다는 게 구단들의 방침인 듯하다.
FA 선수들의 구단과 계약 실랑이는 금액도 금액이지만 계약기간을 놓고 벌어진다. 선수는 자신의 앞날을 최대한 보장받고 싶어 하지만, 구단들이 그런 위험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것도 계약난항의 주요인이다.
‘FA 졸부’ 현상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선수가 목소리를 크게 낸다고 구단들이 호락호락 목돈을 안겨줄 것 같지는 않다.
박종훈 단장은 “선수들에게 조건은 제시했지만 쉽게 타결될 것 같지는 않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송광민의 경우 구단 생각은 지난 시즌 진행을 상관하지 않고, 그걸 떠나서 냉철하게 가능성을 분석하고 제시한 조건인데 선수 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용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소모적인 계약 줄다리기를 하기 보다는 선수나 구단이 다 함께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시쳇말로 ‘FA=대박’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게 바른 방향이 아닐까. 프로야구 시장도 경제논리와 시대상황에 역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