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겸 가수 정지훈의 ‘멘탈’은 닮고 싶을 만큼 단단하다. ‘비’라는 이름은 여전히 월드스타의 상징이고, 음악과 연기 그리고 예능까지 넘나들며 톱을 찍은 만능엔터테이너의 길을 개척한 인물. 이처럼 찬란한 업적을 세워올 수 있었던 것은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오며 살아왔기 때문.
정지훈은 최근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 27일 개봉)’ 관련 인터뷰를 통해 OSEN과 만났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희망을 잃은 시대에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 1위를 차지하며 동아시아 전역을 제패한 ‘엄복동’의 업적을 소재로 당시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독립군들의 활약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작품.
정지훈은 주인공 ‘엄복동’ 역을 맡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자전차를 타고 달리는 엄복동을 연기해야 했던 그는 실제로 수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언제나 ‘노력’의 아이콘으로 불려왔던 정지훈은 이번에도 역시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연습을 했다. 어쩌면 이런 역할은 정지훈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대목. 올림픽공원에 선수촌에 입단해서 선수만큼 탔고, 영화 크랭크인 하기 3개월 반 정도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자전거 위에서 시간을 보냈던 그다.
이처럼 노력과 열정은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이 정지훈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하는 매력이자 그의 정체성이다. 지난 2017년 딸아이의 아빠가 되기도 한 정지훈은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정지훈과 나눈 일문일답.
-엄복동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가.
▲100년 전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엄복동 선생님처럼 해내야 된다는 부담감보다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기 때문에 제가 저의 주관적인 해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고민했다. 포털사이트, 남겨져 있는 책들, 친척 어르신분들한테 여쭤봤다. 당시 엄복동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여쭤봤지만 자세한 자료가 없더라. 공부를 많이 했고, 결과론적으로 굉장히 단순하면서 순수한 한 청년이 자전거에 반해서 자전거에 몰입하다 어쩌다 보니 자전차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이다 보니까 굶주리고 힘들었던 조선인의 애환을 달래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박지성, 김연아 선수처럼 우리나라 국제적인 대회에서 우승하면 위로를 받는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오는 부담감은?
▲너무 컸다. 허구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나.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많이 했다. 객관적인 해석은 타인에 의한 의견, 주관적인 생각은 제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럴 수 있겠구나 이건 이렇게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가수로서의 정지훈, 배우로서의 정지훈은?
▲과연 어떻게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하나 생각했다. 무대에 있는 나도 나고, 가정을 가지고 있는 정지훈도 나고, 연기를 계속할 거라면 정지훈이라는 배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다. 사실 이런 상업적인 영화를 시작을 하고 싶진 않았다. 상업적인 영화를 했을 때 정말 독특한 캐릭터에 악역이나 단 한 컷이 나와도 신스틸러처럼 감춰진 듯 ‘저게 정지훈이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는 게 저의 목표이자 우선이었다.
저에겐 일이 두 개이지 않나. 가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고 연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계속 아시아투어를 하고 앨범 제작에 관여하고 더 좋은 무대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과정에 계획에 없던 대본이 들어온 거다. 어느날 갑자기 이범수 선배님이 대본을 던져주셨다. 저는 사실 ‘자전차왕 엄복동’이라고 해서 가족을 위한 영화, 허구의 인물을 만드신 줄 알았다. 형이 이제 패밀리 무비를 하시나 생각하고 읽어봤는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시간이 딱 6개월이 뜰 시기였다. 스케줄이 맞고 이분을 한번 표현해보고자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제 목표는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늘 여러가지로 20년 동안 심판을 받아왔다. 직업의 특성상 심판을 받는 게 두렵지 않으나 참고는 하되, 제 목표는 천천히 저라는 사람의 인물을 만드는 게 숙제인 것 같다. 앞으로는 작은 역할, 분량이 작다는 게 아니라 숨어있는 듯 아닌 듯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게 제 욕심인 거다.
-정지훈은 가수 출신으로 연기까지 성공한 케이스의 대표적 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당시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어떤 각인이 된 사람이 다른 직업에 바람을 피우는 것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구조였다. 2000년 초반대는 더 그랬다. 신인상을 받고 가수로서 탄탄대로로 앞으로 3~4년은 충분히 비라는 인물을 많이 찾을 거라고 할 때 제가 갑자기 ‘상두야 학교가자’는 시놉시스를 읽고 무조건 하겠다고 매달렸다. 다 반대를 많이 했다. 왜 굳이 연기를 하고 싶냐고 여쭤보시길래 저는 원래 연영과 출신이고 연극을 전공했다. 그리고 무대를 고등학교 때 몇번 올려봤었다. 무슨 ‘무데뽀' 정신인지 하고 싶다고 했는데 다행히 사랑해주셔서 일정 부분 인정도 받고 매 맞을 때는 매 맞기도 하고 비와 정지훈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 것 같다. 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비와 정지훈은 이 길이냐, 아니면 이 길이냐를 정해야 할 것 같다. 무대는 사실 몸이 옛날 같지는 않다. 그래서 운동도 꾸준히 하는데 마치 스포츠 선수와 똑같다. 몸의 전성기는 이제 지나가는 시기니까 댄스가수라는 역할은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 내려놓는다는 게 아니고, 아침저녁 운동을 꾸준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아이돌가수가 연기를 하는데 연기를 못하면 혼나고 준비가 다 된 아이돌이 연기를 하는데 너무 잘하면 박수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색안경을 끼지 않고 봐야하지 않을까.
-후배들의 길을 개척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나.
▲개척했다기 보다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다. 저는 연기가 너무 좋았다. 무대는 뭔가 카메라가 보통은 50~60m 멀어져 있다. 배우는 카메라가 가까이 와 있는 게 저는 너무 좋은 거다. 어떻게 보면 다른 인물을 산다는 것 가상의 인물로 연기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뜻하진 않았지만 어차피 진짜 연기를 하고 싶긴 했고, 계획을 잡진 않았으나 계속 가게 된 거다. 어떻게 보면 저의 첫 작품이 저한테 정말 감사했다. 정말 매력있는 캐릭터를 할 수 있게끔 해줬던 작품인 것 같다.
-아빠가 되면서 연예활동에 있어서 달라지게 된 변화가 있나?
▲저는 사실 달라진 건 없다. 가정을 꾸렸다고 해서 아빠라는 타이틀을 가졌다고 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이야기는 저한테는 첫 번째 규칙이 생긴 것 같다. 예전만 해도 저의 아이는 이렇고 저의 식구는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밝게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서워졌다. 아이가 너무 예쁘고 사실 공개도 하고 싶고, 그게 나중에 다 칼이 되어서 돌아오더라. 이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앞으로도 철저히 가족과 일은 벽을 치고 싶다. 저는 제 가족이 다치는 걸 원치 않다. 작품을 고르거나 그런 기준에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드러내놓고 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조심스러워졌다.
-그것이 정지훈에게는 본인의 것을 지키는 방법인가.
▲저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사람이다. 가족을 건드리면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된다. 저야 저를 죽이든, 저에 대해 오해가 있든, 그럴 수 있다. 저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졌으니까 논의의 편의상, 말 그대로 대중에 의한 저는 장난감이라고 선포를 하고 이 업계에 들어온 거니까 저는 갖고 놀다가 버리셔도 괜찮은데 가족을 건드리면 가끔씩 선을 넘게 되더라.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니 선을 긋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 besodam@osen.co.kr
[사진] 레인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