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일국이 돌아왔다. 지난 2017년 연극 '대학살의 신' 이후 2년여 만의 복귀로, 이번에도 '대학살의 신'을 선택한 그는 이전보다 한층 여유로워진 매력을 뽐내며 관객들을 휘어잡고 있다.
현재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대학살의 신'은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으로, 11세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소년의 이빨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 때린 소년의 부모인 알렝과 아네뜨가 맞은 소년의 부모인 미셸과 베로니끄를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지난 2017년에 이어 이번에도 '대학살의 신'에 합류하게 된 송일국은 극 중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공처가이자 중립을 지키는 평화주의자 미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그와 함께 알랭 역에 남경주, 아네뜨 역에 최정원, 베로니끄 역에 이지하가 합류해 환상의 케미스트리를 발휘 중이다. 각고의 노력을 들여 지난 2017년과 동일한 캐스트를 완성한 보람이 있는 것.
무엇보다 송일국은 미셸의 다채로운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며 '송일국의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2017년에서의 연기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매력으로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내고 있다. 공백기 동안 가족들과 함께 보낸 프랑스에서의 시간이 이번 연기에 큰 도움을 줬다는 설명이다.
"가족들과 함께 일 년 넘게 프랑스에서 생활했어요. 사실 저로선 경력 단절인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 작품으로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살의 신'은 결국 가족들의 이야기니까요. 지난 1년 동안 해외에서 지내면서 저 또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거든요. 아내하고 24시간 붙어 있으니까 아무래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신경전이 오가게 됐죠. 아이들하고 부딪히고요. 그걸 여행 다니면서 풀고 그랬는데 그 시간들이 공연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극 중 미셸이 아내인 베로니끄랑 말다툼을 하는 장면에서 이전보다 확 오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제가 아내랑 존대를 하다 보니까 파리에 가기 전엔 크게 싸울 일이 없었어요.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언짢은 적도 없었고요. 그런데 이번에 파리에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크게 낸 적이 있었어요. 물론 그러면서도 존대를 했지만요. 그렇게 1년 동안 지지고 볶았더니 저희 연극이 다시 와닿더라요. 2017년 공연은 소리만 지르다 끝난 느낌인데 이번에는 그 안에서 디테일을 찾은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많이 좋아졌다고 해주시고요. 싸울 때도 소리만 지르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 안에서 단어 하나에 디테일이 생겼어요. 또 살이 찐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완전히 아저씨 같아지고.(웃음) 프랑스에 있으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이 결정되면서 더 많이 먹었거든요. 미셸이 살이 찌면 좋은 캐릭터니까요. 15kg 정도가 쪘는데 나중에 뺄 생각하면 걱정이긴 해요."
이처럼 배우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송일국이지만, 막상 그는 "아직도 전 중고 신인이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극 중 캐릭터와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것도 선배들 덕분이라는 것. 자신은 아직 더 성장해야 하며, '대학살의 신' 출연은 자신에게 배움의 장이나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배우가 웃는 거와 우는 게 되면 반이 된 거라고 했는데 사실 전 웃는 건 그동안 우습게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런데 연극 2편 만에 이제야 웃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우는 것도 어려운데 웃기는 것도 어렵다니. 그래도 함께 연기하는 선배님들이 워낙 베테랑이셔서 '놀아봐' 느낌으로 제 연기를 다 받아주시니까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또 세 분은 여유롭게 연기를 하다 보니까 관객들의 웃음도 더 잘 이끌어내는 것 같고요. 저는 저도 모르게 오버하게 되니까 힘들 때도 있고 그러다 힘이 좀 빠지면 잘 될 때도 있고. 요즘 무대에서 일희일비하고 있어요.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해외 생활을 하고 오니까 이 작품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의미로 저를 돌아보게 됐어요. 아직도 전 중고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커튼콜 때 인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있거든요. 관객을 만나는 게 너무 쑥스러워요. 제가 그 꼬리표를 스스로 뗐다고 느꼈을 때 당당하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전 운이 좋은 사람이죠. 세 분한테 많은 걸 배우고 있으니까요. 감사한 마음에 연습 때 제가 늘 간식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거라도 안 하면 마음이 불편했어요. 계속해서 배우는 느낌으로, 연습실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내가 죽기 전까지 이렇게 좋은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에요."
이 외에도 송일국은 2019년 버전의 특징으로 "'블랙 코미디' 중 '블랙'이 부각됐다"면서 "저희 작품에서 알게 모르게 현대인들의 이중성을 빗대어 표현하는 게 많다. 그런데 한 번 보시면 흐름을 따라가느라 알기 힘들고 여러 번 보셔야 눈치챌 수 있다. 그러니 저희 '대학살의 신'을 여러 번 봐달라"고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 앞으로 남은 무대에서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 nahe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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