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의 재발견? 여진구 덕분"
1997년 MBC ‘뽀뽀뽀’로 데뷔해 어느새 연기 경력 2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 배우. 하지만 늘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다며 겸손을 넘어 자책하는 귀여운 성격. 취재진의 명함을 받기만 할 수 없다며 소속사 과장으로 직접 명함을 만들어 수줍게 건네던 이. 배우 이세영이다.
이세영은 최근 종영한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유소운 역을 맡아 여진구와 함께 안방을 사로잡았다. 전작인 ‘화유기’ 때와 또 다른 연기로 중전의 품격을 알렸고 절절한 로맨스로 ‘이세영의 재발견’이란 타이틀까지 얻었다. 연기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길 법도 한데 이세영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알짜배기 배우다.
7일 오후, 소속사 프레인TPC 사옥에서 ‘왕이 된 남자’ 종영 인터뷰차 취재진과 만난 그는 “이 작품에 캐스팅 되고 유소운을 연기하게 돼 감사했다. 좋은 분들과 같이 작업했는데 특히 감독님이 너무 훌륭했다. 촬영장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매 순간 귀중한 수업이었다. 행복했는데 시청자들의 사랑까지 받아서 너무 감사하다. 소중한 기억으로 여운이 남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지난 1월 7일 첫 방송된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으로, 폭군 이헌(여진구 분)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쌍둥이보다 더 닮은 광대 하선(여진구 분)을 궁에 들여놓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여진구의 1인 2역과 함께 이세영의 무게감 있는 중전 연기도 극의 인기 비결이었다.
이세영은 “원작과 비교하는 목소리가 컸는데 캐릭터의 연령대도 낮아지고 드라마로 리메이크 하면서 멜로 라인이 더 강화되면서 볼거리도 많아졌다. 이헌이랑 하선을 여진구가 차별화해서 표현했고 시청자들이 공감을 많이 해준 것 같다. 덕분에 끝까지 사랑 받은 것 같다. 시청자로서 새드 엔딩이 될까 조마조마했는데 해피 엔딩이라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방송된 마지막회에서 하선은 왕위를 물려준 후 백성으로 돌아가 소운과 행복한 여생을 꿈꿨다. 하지만 대비(장영남 분)의 복수를 하러 자객들이 나타났고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 소운은 하선을 2년간 기다렸고 개암나무 열매에 소원을 빌자 거짓말처럼 하선이 눈앞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나 평생을 약속하며 행복하게 갈대밭을 걸었다.
이 같은 엔딩을 두고 “혹시 저승에서 만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세영은 “갈대밭의 아련함은 미세먼지 때문이다. 청량한 하늘에 갈대밭 배경을 기대했는데 그날 따라 너무 뿌옇더라. 드론샷 때 다정하게 보면서 걸어가야 하는데 죽으러 가는 것 같다고 너무 슬퍼보인다고 감독님이 그러셨다. 방송에선 더욱 뿌옇게 나와 아쉬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세영은 깊이 있는 캐릭터 소화력으로 유소운을 능동적이고 강단 있는 중전으로 그렸다. 멜로를 이끄는 주축인 만큼 진폭이 큰 캐릭터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표현해 한층 더 풍부하고 설득력 있는 서사를 완성시켰다. 여진구의 1인 2역도 매회 찬사를 이끌어냈지만 이세영의 흔들림 없는 연기 또한 박수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공을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돌렸다. 이세영은 “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제 앞가림하기 벅찼다. 더군다나 여진구가 너무 훌륭하게 소화하니 그의 상대역으로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끝까지 긴장 안 늦추고 연기했다.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인다”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이세영은 분명 베테랑 배우다. 사극의 경험도 몇 번 있다. 하지만 촬영 때마다 김희원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여진구, 김상경, 장광 등 선후배 배우들과 합을 맞춰 유소운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지만 한없이 겸손하게 몸을 낮춰 전체에 녹아든 그다.
이세영은 “내가 소운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나 싶은 의심은 마지막 신까지 이어졌다. 마지막엔 목이 메어서 대사가 안 나와 NG를 냈다. 그때서야 내가 소운이 됐구나 싶더라.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다가 소운으로 살아왔구나 싶었고 끝나고서도 힘들겠구나 잠깐 생각했다. 제가 몰입할 수 있게끔 여진구와의 합이 정말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여진구는 폭군 이헌과 광대 출신의 어진 임금 하선 역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시청자들은 그의 소화력에 매회 감탄했다. 파트너로서 가장 가까이서 그의 연기를 지켜본 이세영 역시 마찬가지. 그는 “여진구의 1인 2역이 어땠나”라는 질문에 “경이롭더라”고 단박에 답했다.
이세영은 “어쩜 저렇게 눈빛과 자세, 태도, 목소리, 걸음걸이까지 다 다르게 표현할까 싶더라. 어떤 연기든 여진구로 보이면 힘들 텐데 이헌이 됐다가 하선이 됐다가 하니까 소운이가 느낄 의아함과 불안함을 제가 표현해야 할 때 덕을 많이 봤다. 여진구가 워낙 잘하니까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연기했을 뿐이다. 스스로 칭찬할 건 없는 것 같다”고 한없이 몸을 낮췄다.
아역 출신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연기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 이세영이다. 그는 “어렸을 땐 좀 더 큰 역할 맡기 위해서 무엇 하나 완벽하지 않고 부족함이 있으면 나아갈 수 없다는 마음이 컸다. 지금은 매 순간 뒤에가 낭떠러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비관적인 게 아니라 현실에 충실하면서 최선을 다하며 뒤를 돌아보지 말자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어느덧 28살이 된 이세영은 많은 이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매 작품이 그렇지만 이번 작품은 제가 지금껏 한 작품 중에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고 애정하는 작품이다. 현장에서 너무 행복했다. 제가 애정하는 캐릭터를 공감하면서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시청자들 덕분에 힘도 많이 났다.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작품이다. 소운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최애캐’다. ‘화유기’ 때 부자가 저의 최애였는데 다음 작품 때 또 최애가 바뀌도록 열심히 하겠다. 저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감사한 순간이었다”고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관객들에게도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신뢰를 쌓고 싶다. 지금까지는 현장에서 감독님 동료들의 힘을 얻어서 작품했는데 동료로서도 힘이 되고 싶다.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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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레인T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