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작품인 웹소설 ’애유기'는 고대소설 '서유기' 속 인물인 삼장을 비롯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환생한 요괴 아이돌이라는 설정으로 그려진다. 삼장의 환생인 서다나와 손오공의 환생인 원제후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 주된 골자다. 2017년 12월 23일 첫 방송된 홍정은-홍미란 작가의 tvN ‘화유기' 역시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다. ‘애유기’의 정은숙 작가는 '애유기'와 '화유기'의 여주인공 삼장의 설정, 남주인공 설정, 요괴 설정, 요괴 기획사, 최종 보스, 빙의 설정 등을 유사점으로 꼽으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홍자매 측은 "해당 작품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양측은 유사한 설정을 두고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결국 정은숙 작가는 지난해 8월, 홍자매 측에 저작권 침해(표절)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었고 지난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홍자매 측은 정은숙 작가에 대한 명예훼손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쟁점부터 판결까지 양측은 여전히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은숙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애유기'와 '화유기'의 유사성을 비교했고 홍자매 측은 보도자료로 반박에 나섰다.
◆작품 구상 시기
홍자매 측은 "2014년 SBS '주군의 태양'을 마치면서 다음엔 요괴가 등장하는 퇴마물을 기획하려 했다. 구체적으로 '서유기'를 모티브로 하자고 제작사, 감독님들과 회의를 했다. '화유기'의 초기 시놉시스는 2017년 3월 20일에 나왔다. '애유기'가 2015년 가을부터 연재가 됐다고 하는데 연관성 있는 사람이 있나 확인해 달라"고 설명했다.
정은숙 작가는 "그게 2015년에 나온 '애유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결론은 시놉시스가 '애유기' 발표된 후에 나왔다는 뜻이지 않냐"며 "오히려 그들은 그 주장을 증빙할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 '애유기'는 2015년 9월 2일부터 2016년 2월 18일까지 총 68회에 걸쳐 포털 사이트 네이버 웹소설로 연재됐다. 2016년 10월에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화유기’는 2017년 2월 23일 제작사와 계약이 돼 드라마 시나리오로 집필됐다. 드라마는 2017년 12월 23일부터 2018년 3월 4일까지 방송됐다"고 밝혔다.
◆삼장이 여주인공
홍자매 측은 삼장이 여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다수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고 정은숙 작가의 의혹에 선을 그었다. 삼장은 연꽃향이 나는 아름다운 여자라 요괴가 몰리는 설정으로 재해석했다고 알렸다.
정은숙 작가는 "별나라 손오공의 오로라 공주도, 드래곤볼의 부르마도 삼장 포지션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전생의 삼장이 여자로 환생한 건 아니다"며 '애유기'에 적은 표현으로 홍자매 측의 반박을 지적했다.
◆괴팍한 남주인공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자도 패는 성격의 남자주인공에 관해 홍자매 측은 드라마 속 흔한 설정이라며 "'주군의 태양' 주중원은 여주인공의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했다. 아무에게나 막하는 캐릭터는 '애유기' 작가가 만든 특이 설정이라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정은숙 작가는 "흔한 캐릭터인 게 맞다. 여러 가지 겹쳐지는 요소 중에 하나라서 근거로 제시했는데 오버한 거라면 정중히 사과드리겠다. 죄송하다"고 했다.
◆요괴들의 설정
'화유기'에서 삼장 진선미(오연서 분)는 연꽃향 피 냄새를 가졌다. 이 향기를 맡은 요괴들은 그를 잡아먹으려고 몰려들었다. 홍자매는 "인간의 기를 빨아 먹는 설정은 연예 기획사를 하고 있는 몇몇 요괴만의 힘을 보충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정은숙 작가는 "'애유기' 요괴들도 기본적으로 인간을 잡아먹는다. 다만 살인사건으로 경찰이 출동하면 위험하니 살아남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인간들의 정기를 먹는다. 연예계에 있는 요괴들만 이 방법을 사용한다"고 맞섰다.
◆연예 기획사가 배경
홍자매는 "연예 기획사 설정은 그간 수많은 무대로 쓰여 왔던 공간"이라며 자신들의 작품인 2005년 '쾌걸춘향'과 2009년 '미남이시네요'를 예로 들었다. "연예기획사는 '애유기'에만 나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라고.
정은숙 작가는 "당연히 기획사가 배경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평범한 곳이 아니라 요괴 연예인을 다수 거느린 기획사이고 사장도 요괴인지, 어떻게 같은 우연이 이렇게 겹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고 되물었다.
◆최종 보스
홍자매 측은 '애유기' 작가가 유사성 예시로 든 최종 보스에 관해 "드라마 마지막에 제일 큰 악귀가 나오는 게 어떻게 표절인가. 그리고 우리의 최종 악귀는 흑룡"이라면서 최대 악인이 아닌 흑룡을 내세웠다.
정은숙 작가는 "'애유기'의 메인 악역인 이세민이 전생에 황제였고, '화유기'의 악인 강대성(송종호 분)은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자라는 점에서 마음에 걸렸다. 사람을 차로 치어 죽이고, 죽은 사람은 진 사장(애유기)과 진 부자(화유기)이고, 악귀가 죽은 사람의 몸을 차지하고. 비슷한 점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반박했다.
◆빙의 설정
홍자매는 "빙의는 '주군의 태양'에서도 여러 번 등장했다. 우리 작품 이전에도 셀 수 없이 많다. '화유기'에서 아사녀 설정은 빙의가 아니라 악귀가 몸을 차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은숙 작가는 '빙의'의 사전적 의미를 거론하며 "악귀가 몸을 차지한 것과 빙의의 다른 점을 모르겠다. 원래 있던 영혼을 밀어내고 그 몸을 차지해 조종한 거라 내용은 같다"고 꼬집었다.
◆"표절 절대 아냐" vs "우연이 너무 겹쳐"
홍자매는 "'애유기'라는 작품은 과거에도 본 적이 없고 아직까지도 읽어 보지 않았다. '화유기'는 매체를 통해 모두 방영 되었고, '애유기'라는 소설도 읽어 볼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표절이라는 의혹이 든다면 일방적 주장에 근거한 비난 이전에 직접 보시고 판단해 달라"며 거듭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정은숙 작가는 "홍자매 작가님들이 올린 반박문 모두 읽었는데 '흔한 클리셰'라는 주장만 하실 뿐이지 왜 이런 우연이 한 작품에서 10개 넘게 겹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다. 저는 그게 가장 궁금하다”고 했다.
◆"유사성 전혀 없어" vs "재판부도 인정했다"
홍자매 측은 승소한 후 “‘애유기’ 작가는 ‘서유기’를 모티브로 창작 되었을 때 당연히 등장할 수 있는 인물인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우마왕, 홍해아, 나찰녀가 등장하는 것이 유사하다고 주장하였고, 그 외 남자주인공이 키 크고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으며 스포츠카를 탄다는 점, 남녀주인공이 비극적인 운명으로 엮여 슬픈 사랑을 하는 점, 남녀주인공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 사랑에 빠진다는 점, 교통사고로 극 중 인물이 사망 한다는 점 등이 유사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고대 소설 ‘서유기’의 중요한 설정을 가져 온 것이거나, 기존의 드라마 영화 등에 셀 수 없이 나왔던 일상적인 설정일 뿐이며, 정작 실질적 유사성은 전혀 없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은숙 작가는 최근 OSEN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유사하다고 꼽은 24가지 요소를 빼면 ‘화유기’에 무슨 얘기가 남나? 보지 않고 썼다고 표절이 아니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삼장이 여자로 태어나 손오공과 사랑에 빠지는 건 아이디어로 볼 수 있는데 과정과 사건까지 아이디어로 볼 수 없지 않나. ’애유기’의 전개와 설정을 ‘화유기’에 거의 그대로 가져갔는데 어떻게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단 말인가. 재판부에서도 두 작품 사이 일부 유사성을 인정하면서 별개의 창작 저작물이라고 한 것 뿐”이라고 억울해했다.
◆"'미남이시네요'랑 비슷해" vs "'화유기'도 '애유기' 표절했다고 인정하는 꼴"
오히려 홍자매 측은 ‘애유기’의 주요설정들이 되려 자신들의 2009년작 ‘미남이시네요’와 유사하다며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표절제기 행태로 인하여 창작자들이 받게 되는 고통과 피해가 극심함을 토로하며, 본 판결이 근거 없이 제기한 저작권 침해 주장의 폐해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지난 몇 년간의 악의적인 허위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마치 사실인양 변질되어 퍼져 있음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허위사실 작성 유포자들에 대해서도 강력 법적대응을 할 방침"이라고 했다.
반면 정은숙 작가는 “그렇다면 ‘화유기’가 ‘애유기’를 표절한 게 맞다는 거 아닌가. 저를 깎아내리려는 거다. 그들에게 표절 시비는 한두 번이 아니다. 이 기회에 입을 틀어막겠다는 것 아닌가 싶다. 곧 신작이 나오지 않나. 본인들은 무분별한 표절시비가 창작성을 저해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정당한 비판을 막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름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다. 표절 소송에 휘말리면 작가가 절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계속 몸부림 치고 저항해야 표절하는 사람들이 몸사리지 않을까 싶다. 재판에선 졌지만 표절하면 소송 당한다는 전례가 있어야 의미가 있을 테니”라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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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vN,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