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돈독했던 ‘1박 2일’ 멤버들의 우정. 그래서 매번 “이 멤버, 리멤버, 포에버”를 외쳤다. 하지만 이제 더는 이들의 파이팅을 들을 수 없다. 막내 정준영 때문이다. 2007년 8월부터 무려 12년간 ‘국민 예능’으로 일요일 저녁을 책임졌던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이 안방을 떠나고 말았다.
‘1박 2일’ 측은 연일 계속되는 정준영 몰카 논란에 15일 “KBS는 최근 불법 촬영과 유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정준영을 모든 프로그램에서 출연 정지시킨 데 이어, 당분간 '1박 2일' 프로그램의 방송 및 제작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번주부터 '1박 2일' 시간에는 당분간 대체 프로그램을 편성할 예정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 '1박 2일'을 기다리시는 시청자를 고려해 기존 2회 분량 촬영분에서 정준영이 등장하는 부분을 완전 삭제해 편집한 후 방송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전면적인 프로그램 정비를 위해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당분간’이란 표현을 쓰며 프로그램 재정비를 강조했다. 하지만 언제 안방에 돌아올지, 혹은 돌아올 수 있을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몰카 혐의로 연예계에서 퇴출된 정준영을 빼고 나머지 차태현, 데프콘, 김준호, 김종민, 윤동구에 인턴 이용진까지 6인 체제로 돌아오는 그림이 가장 아름답지만 어찔 될지는 미지수다. 막내 정준영이 몰카 범죄자였다는 사실에 멤버들과 제작진이 받았을 충격과 배신감이 큰 이유에서다.
‘1박 2일’ 팀의 정준영 사랑은 유별났다. 2013년 12월 1일 시즌3 막내로 합류한 정준영은 4차원 예능감에 행운의 사나이로 복불복을 다 피해가는 등 특별한 재미를 선사했다. 큰형이었던 고 김주혁과의 ‘케미’도 좋았고 형들 잡는 ‘막내 온 탑’으로 시청자들의 볼거리를 도맡았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인 가수에서 정준영은 ‘1박 2일’ 덕에 믿고 보는 프로 예능러로 인정 받았다.
그래서 ‘1박 2일’ 팀은 정준영이 2016년 9월, 전 여자 친구에게 몰카 혐의로 피소됐다가 무혐의를 받자 방송에서 공공연히 자숙 중인 그를 소환해 그리워했다. 멤버들은 막내의 빈 자리를 느끼며 5인 체제를 낯설어했고 리더 격인 차태현은 제작진과 회의까지 하며 정준영을 데려올지 새 멤버를 구할지 머리를 맞댔다.
결국 정준영은 4개월간 자숙 끝에 2018년 2월 ‘1박 2일’에 돌아왔다. 멤버들 모르게 제작진과 짜고 깜짝 등장한 정준영은 “그동안 정말 그리웠는데, 앞으로 시청자 여러분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형들은 그에게 달려가 안겼고 정준영은 흐뭇하게 웃었다.
제작진이 정준영 사태에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다. 알고 보니 정준영은 지난해에도 몰카 혐의로 경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은 그의 몰카 혐의를 포착해 휴대전화 복원업체에 증거를 요구했지만 업체 측은 구속영장이 나오면 전달하겠다고 거절했다. 그래서 경찰은 검찰에 압수수색 영장을 요청했지만 검찰은 2016년 정준영이 무혐의 받았던 사안을 들며 반려했다.
그렇게 정준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1박 2일’을 비롯한 여러 방송 활동을 펼쳤다. 국민들이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대목이다. ‘1박 2일’ 측은 “정준영이 3년 전 유사한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 당국의 무혐의 결정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출연 재개를 결정한 점에 대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2007년부터 국민 예능으로 자리매김해 장수한 ‘1박 2일’이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 등이 이끌었던 황금기와 차태현, 김종민, 김준호가 활약했던 부활기를 거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국민 예능이 이대로 사라질지, 정준영 사태를 해결하고 보란듯이 안방에 돌아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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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박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