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드라마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눈이 부시게’는 그야말로 눈이 부시게 따뜻했던 휴머니즘의 명작이었다. 특별했던 점은 단연 알츠하이머 환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오후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극본 이남규 김수진, 연출 김석윤)에서는 김혜자(김혜자 분)가 25살의 김혜자(한지민 분)로 돌아갔다는 판타지 속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는 반전을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를 다룬 작품은 많지만, 소위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은 정형화돼 있던 것이 사실이다. 난폭하고, 떼쓰는 아이 같다. 가족들의 골치거리가 되거나 희화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던 한 사람의 삶에서 아팠던 기억은 묻고 좋았던 기억만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알츠하이머를 앓는 환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기억의 퍼즐들을 맞춰나가며 이 작품은 12회까지 달려왔다.
흔한 타임워프 판타지 드라마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도 혜자가 사실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 반전에 머리가 잠시 멍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회에서는 아들 대상(안내상 분)이 혜자를 용서하게 되는 이야기와 과거의 혜자(한지민 분)와 이준하(남주혁 분)의 행복했고 또 불행했던 기억들이 모두 공개됐다.
준하는 결혼기념일 출근한 후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다는 명분이었는데, 어렵게 면회를 간 혜자는 고문에 시달린 준하를 보게 됐다. 그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혜자의 집에는 사망 통지서가 도착했다. 경찰서에서 확인한 유품에는 준하의 시계만이 사라진 상태. 담당 형사의 손목에 걸려 있던 시계를 끝내 가져오지 못했던 혜자는 시간이 흐른 후 백발이 되어 나타난 시계 할아버지와 재회했다. 혜자는 시계를 돌려 받지 않았고, 준하의 제사를 지냈다.
혜자는 준하를 잃은 후 대상을 돌보지 않았다. 무관심 속에서 자란 준하는 혜자가 보는 앞에서 차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됐지만, 냉정하게 키웠다. 그때의 죄책감이 마음 깊숙이 남았고, 대상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서도 아들을 향한 사랑만은 남았다. 눈이 오는 날 아들이 넘어질까 눈을 쓸던 젊은 시절의 혜자와 이제서야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대상의 눈물은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을 장면.
방송 말미 혜자는 꿈결에 한번도 나와주지 않았던 남편 준하를 만났다. 불행했던 기억은 모두 잊고, 가장 행복했던 기억 속에 머무르며 아마도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혜자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때가 기억 속 노을이 지던 그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일 수 있겠지. / besodam@osen.co.kr
[사진] '눈이 부시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