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혜빈에게 ‘정상이’에 대한 추억은 모두 따뜻한 기억들이었다. 어딜 가도 “아이고 의사양반 왔어?”라며 반갑게 맞아주는 경험을 하고 나니 앞으로 사랑 받는 역할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이토록 정상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전혜빈이 층층이 쌓아올려간 노력의 결과다.
“이번 드라마는 포상 휴가 가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헤어지기 싫어했던 터라 아직까지도 안 끝난 것 같다. 거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더라. 마치 가족인냥 그렇게 지내게 되는 게 참 신기한 것 같은데 이 드라마가 줬던 힘인 것 같다.”
KBS 2TV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극본 문영남 연출 진형욱)가 막을 내리고 전혜빈을 만났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이 앞서도 그래왔듯 이번에도 캐릭터의 이름만 봐도 대충 그 인물의 성격을 알 수 있었는데, 전혜빈이 맡은 캐릭터는 이름부터가 정상인 ‘이정상’이었다.
“배우로서 이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할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데 문작가님 특징은 깊게 고민하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이 대본에 나와 있는 캐릭터를 그대로 연기할까 그게 가장 큰 숙제였다. 내 생각은 이렇다가 아니라 오히려 이런 연기를 안 해봐서 어려웠다. 이번 연기를 하면서 싹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뚜렷한 캐릭터를 맡고 연기를 하는 것들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고, 캐릭터들에 확실한 색채감이 있었다. 예를 들어 협주를 하면 저는 묵직한 베이스, 풍상 오빠는 메인 피아노, 화상은 드럼 등 각자 맡은 악기가 뚜렷한 게 있었던 것 같다. 합주가 참 좋았다 생각한다.”
정상은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에 이풍상(유준상 분)을 유일하게 뿌듯하게 해주는 자랑이다. 물론 정상은 극중 ‘불륜’으로 풍상의 걱정거리를 하나 더 늘려놨지만, 간암에 걸린 풍상을 형제들 중 유일하게 보듬어주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애정을 독차지한 바다.
“문영남 작가님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는 작품을 만들어주신다는 거다. 그간 해오셨던 작품들만 봐도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나 같은 캐릭터가 있다는 점이다. 나 혼자만 아는 아픔을 끌어내고 위로하는 작품을 쓰셨던 것 같다.”
“저는 의사 양반이지 않았나. 어디 가서도 할머니들이 의사양반 왔다고 좋아해주셨다. 병원에서 촬영하다가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환자분들이 정말 가슴으로 봐주시더라. 다 자신들의 이야기인 거다. 제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풍상씨 잘 살려줘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 그래야 희망을 그분들이 받으시니까. 나름 생생 리뷰를 많이 듣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재미로 보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봐주셨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작품에서 애정을 독차지하는 경험은 전혜빈에게도 특별한 일이었다. 물론 욕을 먹는 악역도 연기를 그만큼 실감나게 잘 했기 때문에 욕을 먹는다고는 하지만, 대중에게 사랑 받는 캐릭터를 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다음 작품을 결정할 때 미치는 영향도 있었을 터다.
“어떤 캐릭터를 맡더라도 또 그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겠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들이 든다. 누군가한테는 제 편이 될 수 있는 캐릭터는 꼭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 받는 캐릭터, 누군가한테 대변인이 될 수 있는 캐릭터가 되고 싶다. 공감을 많이 받는 힘이 좋았던 것 같다. 제가 유일하게 풍상 오빠의 든든한 지원군이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는데 사랑을 많이 받는 느낌이 좋더라. 악역을 많이 맡으면 그런 게 되게 궁하다.(웃음) 그렇게 제 손을 잡으시면서 '의사 양반 풍상씨 좀 살려달라’고 해주시는데 대중에 사랑 받는 느낌이 참 너무너무 좋더라. 그전에는 제가 욕을 많이 많이 먹었다. 특히 ‘예쁜 오해영’ 할 때, 그때는 착한 애인데 욕을 먹으니까 조금 속상했다.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었는데… 앞으로 사랑 받는 역할을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그래 풍상씨’는 전혜빈의 배우 인생에 특별한 터닝 포인트로 기억될 것은 분명하다. 간만에 사랑 받는 캐릭터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어떤 캐릭터만 부각되는 것이 아닌, 그녀가 말했듯 합주가 중요했던 작품으로서 배우에게도 많은 배움을 준 작품이었다.
“어느 순간 드라마 보는 게 힘들 때도 있었다. 아프고 슬픈 걸 보면 잘 못 쳐다 보는 것 같다. 아픈 아이들이나 감정 이입이 금방 돼서 잘 못 본다. 저도 사실 저희 드라마를 보면서 쉽지 않았다. 다들 아프면서도 저희 드라마를 봐주시지 않았나. 그런데 작품이라는게 누군가한테 흘러가는 작품들이 대다수일 수 있지만 저는 이 작품이 저도 하면서 느꼈던 게 굉장히 제 인생에서 큰 비중이 차지할 것 같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도 어떤 신들이 오랫동안 기억될 장면들이 있지 않았나 기대가 된다. 정말 울면서 화나면서 정말 같이 감정을 실어가면서 채널 돌아가면서도 보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 저도 많이 배웠고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극중 똑부러진 정상이의 모습이 있으면서도 실제로 만난 전혜빈은 밝고 쾌활했다.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영화 ‘럭키’ 속 명장면은 역시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전혜빈은 인터뷰를 마무리할 쯔음 앞으로 코미디로도 관객과 시청자들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늘 제가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인터뷰 때마다 해도 그런 역할이 안 들어오더라. 이야기드린 대로 사랑 받고 밝고 재밌고 유쾌한 캐릭터들을 하고 싶다. 울고불고 하는 신들을 하니까 저도 많이 속상하더라. 웃음을 드릴 수 있는 드라마를 만났으면 좋겠다. 코미디 잘 하는데 왜 안 들어오나. ‘럭키’ 감독님의 작품에 또 출연하게 됐는데 재밌을 테니 많이 봐 달라.” / besodam@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