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드라마 연출작 '고잉 마이 홈'을 뒤늦게 봤다. 그의 영화들을 워낙 좋아하는 팬이기에 10부작 드라마도 밤잠을 설쳐가며 이틀만에 끝냈다. 잔잔한 감동과 아련한 뒷맛, 딱 고레에다 스타일이다. 그런데 주인공 아베 히로시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인물은 따로 있다. B TV에서 드라마 앞에 붙여놓은 한 CF 속 아역배우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큰 인물이 돼야..어쩌구저쩌구" 하인 분장의 고개 숙인 어른들을 앞에 두고 반말 딱딱하는 무개념 귀공녀의 모습이 오프닝이다. 꼰대 성격이라 그런지 눈살부터 찌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녀를 열 번 만났다. 광고를 건너 뛴다? B TV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니까. 드라마 10회가 끝나도록 다른 방법이 없는지 계속 머리를 굴렸지만 소득이 없었다. '꼼짝마라'다. 이게 B TV가 말하던 '투비 오어 낫투비'인가.
새삼 B TV에 시비를 거는 이유는 최근 대한민국 방송 및 영화 콘텐츠 시장의 주력으로 떠오른 IPTV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IPTV를 시청하기 위해 별도의 수신료를 낸다. 통신사들이 결합상품이다 뭐다 떠들지만 절대 싸지않은 매월 수 만원대 금액이 꼬박꼬박 들어간다.
하지만 실시간 TV 방송을 빼고는 IPTV가 기본으로 제공하는 무료 콘텐츠의 질과 양은 기대에 못미친다. 영화든 드라마든 볼만한 수준의 콘텐츠 대부분은 별도의 요금을 내야 시청이 가능하다. IPTV 초창기에 비하면 불과 수 년 동안 유료 콘텐츠 가격은 엄청나게 올랐다. 이걸로 인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부가 판권 시장이 살아나고 불법 다운로드가 줄었기에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속 타고 화 나는 불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왜 내 돈 비싸게 내고 보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드시 풀타임 CF를 참고 봐야되는건가. 얼마전부터는 본 편이 끝난 뒤에도 저절로 광고가 따라온다. 기가 찰 일이다. 차라리 영화는 낫다. 한 번만 참아주면 되니까. 드라마 전편을 구매할 경우, 매회 꼬박꼬박 CF를 챙겨주는 게 기본이다. 이런 '호갱'이 따로 없다. 조만간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그냥 접어야지 싶다. 시즌 7까지 다시 달리다가는 '호갱' 스트레스로 쓰러질 것같아서다.
요즘 엔터업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의 위협을 자주 거론한다. 거대 자본과 막강한 콘텐츠를 앞세워 국내 시장을 독점할까봐 대비책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 때마다 속으로 "문제는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이야"이라고 투덜거리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월정액만 내면 땡이다. 여행업계 용어대로라면 '올 인클루시브'다. 추가 과금? 광고? 한국 콘텐츠가 부족해서 그렇지 내 돈 내고 열받을 일은 거의 없다. 해지하고 다시 계약하는 과정도 원 클릭으로 가능하다.
국내 IPTV 관계자들도 나무보다 숲을 봐야 '타도 넷플릭스'거나 최소한 경쟁이라도 가능할게다. 당장의 광고 매출에 급급해서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은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드라마 앞에 자동적으로 붙는 CF? 광고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시청자들의 반감을 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mcgwire@osen.co.kr
<사진> '왕좌의 게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