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초. 필라델피아 필리스 ‘거포’ 리스 호스킨스(26)가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아 홈을 밟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놓고 ‘산책’ 주루를 한 배경은 무엇일까.
리스킨스는 2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플러싱 시티필드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와 홈경기에 4번타자 1루수로 선발출장, 9회초 좌월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메츠 구원투수 제이콥 레임의 3구째 94.7마일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담장을 넘겼다. 호스킨스의 시즌 7호 홈런, 6-0 승리에 쐐기를 박은 한 방이었다.
그런데 홈런을 치고 난 뒤 호스킨스의 주루가 특이했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천천히 1루부터 2루, 3루를 돌아 홈을 밟았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호스킨스가 홈을 밟기까지 걸린 시간은 34.2초. 호스킨스 개인적으로는 28.9초가 최장 시간이었다. 이날 시간은 5초 이상 더 소요된 것이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다. 전날(24일) 메츠전, 호스킨스는 같은 투수 레임에게 머리로 향하는 위협구를 두 번이나 당했다. 메츠가 9-0으로 크게 앞선 상황에서 초구부터 위협구가 들어왔다. 양 팀 선수들이 덕아웃 앞으로 나오며 금방이라도 그라운드에 뛰어들 듯한 벤치 클리어링 태세를 취했다.
결국 호스킨스가 볼넷으로 출루했지만 레임의 마지막 공도 머리로 날아들었다. 호스킨스는 배트를 거칠게 집어 던지며 불만을 표했다. 벤치 클리어링은 없었지만 호스킨스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대부분 투수들이 몸쪽을 던지지만 그렇게 심한 실투는 없을 것이다”며 고의성을 의심했다.
하루가 지난 뒤 공교롭게도 9회 또 다시 호스킨스와 레임이 만났다. 이번에는 위협구가 없었고, 호스킨스는 큼지막한 홈런으로 설욕했다. 이어 34.2초 동안 베이스를 도는 ‘홈런 산책’으로 레임에게 당한 위협구에 응답했다. 홈런에 이어 타자가 투수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기 후 호스킨스는 “필요한 순간에 나온 홈런을 즐긴 것이다. 보복이 아니다”고 말했다. 투수 레임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잘 던졌으면 호스킨스가 베이스를 돌지 못했을 것이다. (산책 주루는) 그가 한 것일 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호스킨스가 부정했지만 사실상 보복 주루였다. 이날 그의 홈런 주루는 역대 최장시간으로 남았다. 지난 2015년 ‘스탯캐스트’가 추적한 이후 최장 시간 홈런 주루는 2016년 빅터 마르티네스의 34.1초. 그로부터 3년 뒤 호스킨스가 34.2초로 조금 더 시간을 늘려 메이저리그 기록을 새롭게 바꿨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