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던 날(4일), 가족들과 함께 이 영화를 봤다. 강남 코엑스의 메가박스에서 예매는 사흘 전에 마쳤다. 황금연휴를 맞이해서일까. 벌써 좋은 자리들은 다 나간지 오래였다. 제일 작은 상영관 앞쪽의 연결된 사이드석 네자리를 겨우 찾고 기뻐했다.
영화 기자를 꽤 오래했음에도 화제의 작품을 늦게 본 건 순전히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때문이다. 같은 반 친구들이 '어벤져스'를 거의 다 본데다 스포일러가 난무하다며 부모를 졸랐다. "그래, 요즘 4인 가족 극장 나들이 한 번에 10만원은 돈도 아니지만 까짓거 가보자." 어린이날도 끼었으니 모처럼 호기를 부렸다. 덕분에 외식도 했고.
티켓에 찍힌 '어벤져스: 엔드게임' 상영시간은 오후 6시20분에서 9시 31분까지. 무려 3시간 11분에 달했다. "잘 견딜려나" 이 정도 러닝타임의 영화를 극장에서 아이들과 같이 본 건 처음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상영 중간에 그만 나가자고 보채던 그 녀석들을 떠올리는 불안했다.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원래 어린이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전세계를 석권한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도 광속으로 팍팍 진화하는 걸 몰랐던 탓이다. 아이들은 긴 시간 내내 숨도 크게 안 쉬고 수퍼 히어로의 활약에 몰입했다. 사실 상영관 안에서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족 모두 '어벤져스'에 푹 빠져 있었으니까.
어느새 스크린이 검은 크레딧 화면으로 넘어가고 극장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처럼 기립박수를 치는 '국뽕'식 이상 열기는 어느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출연하고 만든 사람들의 사진과 이름이 스크린을 지나갔음에도 몇 몇 외에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기다림은 정녕 행운이었고 행복으로 보답했다. 마크 러팔로우(헐크)와 스칼렛 요한슨(나타샤), 크리스 에반스(캡틴 아메리카) 등을 거쳐 마지막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아이언맨) 까지 '어벤져스' 주역들의 친필 사인이 스크린에서 춤을 췄으니까. 화면이 꺼지고 객석이 불이 켜진 뒤에야 관객들은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값비싼 코엑스 주차요금이 무서워 일찍 일어서자고 보챘다가 눈총을 산 무안함도 이내 흐뭇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상업성이니 어떠니 하는 비난을 넘어선 작품임에 분명하다. 대중을 위한 오락이라는 상업영화의 진정성을 이번 시리즈는 유감없이 선보인 느낌이다. 작가(아마 감독이겠지)의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찬 명작과 이를 극찬하는 비평가들의 난해한 글보다 일반 관객들의 체감 만족도는 훨씬 높았을 터. 이날의 객석 분위기와 예절, 그리고 영화 크레딧도 놓치지 않는 관객의 집중도는 자칭 영화 마니아로 산 지 수 십년 만에 처음 맛보는 환희였다.
관객의 감동은 결국 흥행 기록으로 이어진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한국에서 개봉 11일만에 천만 관객 돌파에 성공, 또 한번 신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엔드게임'은 영진위 통합전산망 공식통계 집계 기준으로 24번째 천만 영화가 됐으며, '명량'의 12일 기록을 깨고 역대 최단 기간 천만 영화 흥행 신기록까지 추가했다. 뿐만 아니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19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29일의 천만 돌파 시점을 압도적으로 앞당겼다.
지난 달 24일 역대 최고 오프닝을 시작으로, 역대 개봉주 최다 관객수, 역대 일일 최다 관객수 및 개봉 1일째 100만, 2일째 200만, 3일째 300만, 4일째 400만, 5일째 600만, 7일째 700만, 8일째 800만, 10일째 900만, 11일째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매일 신기록을 써내려 가고 있다.
전세계 흥행 성적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 3일(현지시간) 미국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어벤져스4: 엔드게임’은 이날까지 북미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17억 8579만 4638달러(2조 893억 7972만 원)를 달성했다. 영화 ‘쥬라기 월드’가 기록한 16억 6600만 달러(1조 9492억 2000만 원)를 넘어 역사상 전 세계적으로 다섯 번째로 수익을 올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한국 극장 흥행 사상 처음으로 2천만을 돌파할 가능성에 베팅해본다./mcgwire@osen.co.kr
<사진> '어벤져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