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빈이 얻어맞은 공은 빈볼이었다.’ 이런 주장이 양쪽 당사자가 아닌 제3 구단의 코치들 사이에서 나왔다.
두산 베어스 외야수 정수빈(29)은 4월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8회 말 상대투수 구승민(29)이 던진 시속 148km짜리 빠른 공을 등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도저히 피하기 어려운 공이었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고통을 호소했던 정수빈은 1차 진단 결과 갈비뼈 8번 골절상(갈비뼈 끝부분이 떨어져 나감)과 공에 얻어맞을 때의 충격으로 폐에 혈흔이 생겨 5월 6일 정밀검진을 받기로 했다.
‘빈볼 진실공방’ 끝에 그 사건은 곁에서 일어난 ‘비본질적인 일’로 인해 흐지부지 됐지만 정수빈이 몸을 다쳐 장기간 그라운드에 설 수 없게 됐다는 엄연한 사실만 남게 됐다. 정수빈이 큰 피해자가 된 것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수빈은 2020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번 빈볼로 인해 자칫 FA 자격이 늦추어지는 것은 물론 그 후유증에 시달려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 놓일 지도 모르는 처지다. 정수빈은 다친 뒤 두산 구단 관계자에게 구승민의 공이 자신을 향해 날아온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빈볼이었다는 얘기다. 김태형 감독이 즉각 뛰쳐나간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비록 당사자인 구승민 투수가 정수빈에게 사과는 했다곤 하지만 ‘정수빈이 다쳤다’는 사실은 돌이킬 수가 없다.
그 이틀 뒤인 4월 30일 양상문 롯데 감독이 “빈볼은 전혀 아니다. 오해다. 본인도 열심히 던지고 싶고, 잘 던지고 싶었는데 공이 안쪽으로 들어갔다”며 “빈볼이 아니라는 것은 하늘에 우러러 맹세를 한다.”고 극구 해명했다. 그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다른 구단 코치들 사이에서도 화제로 남아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사건 뒤 두산이나 롯데가 아닌 제3구단 코치 둘이 담소를 나누는 과정에서 “정수빈이 얻어맞은 공은 100% 빈볼이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들이 그렇게 단정지은 것은 자못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당시 상황이 빈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선 롯데가 두산에 2연패를 당한 뒤에 가진 3연전 마지막 날이었고 그 경기조차 점수 차이가 이미 크게 벌어져 뒤집기 힘든 8회 말이었다. 그렇다고 두산 선수들이 상대를 자극할만한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구승민은 이른바 ‘필승조’여서 볼 제구력이 좋은 투수였다. ‘단순한 위협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패로 팀 분위기가 침체한 롯데로서는 분위기 반전을 꾀할 ‘무언가’도 필요했다. 그럴 때 통상 구단들이 흔히 저지르는 짓거리가 빈볼이다.
두 코치는 “그런 상황에서 빈볼을 던지는 일은 예전에는 흔했다. 연패로 맞이한 3연전 마지막날 7, 8회쯤에 빈볼의 상대 타자는 신인급이나 간판타자가 아닌 중간급 주전선수로 골라 던지게 된다.”면서 “다만 빈볼의 지시는 감독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코치들) 알아서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테면, 만약 이대호나 김재환 같은 구단의 간판타자를 맞히는 일은 ‘전면전’을 각오해야하기 때문에 일이 훨씬 커진다는 얘기다.
‘빈볼’의 판단은 의도를 가진 고의성 여부이지만, 실제로 그 고의성을 명확하게 입증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당사자야 부인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흔히 하는 말로 ‘선수끼리는 안다.’
양중진 검사가 지은 『검사의 스포츠』(2018년)라는 책에 보면 “야구규칙(8.02d)에는 고의적으로 타자를 맞히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심판은 그 투수를 경기에서 퇴장시키거나 경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 형법의 규정을 야구규칙에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같은 조항에 심판이 투수와 감독을 퇴장시키거나 퇴장경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위협구를 벤치에서 지시한 경우를 상정한 것으로 위협구를 지시한 감독에게 형법상 교사범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구태여 법의 잣대를 들이댈 노릇은 아니겠지만 빈볼은 최소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상해다. 빈볼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선수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빈볼은 비열하다. 자신의 열등감이나 열패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독수(毒手)’다.
정수빈은 ‘숨겨진 진실‘의 희생양이다. 양쪽 구단의 주장은 엇갈렸지만 제3자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 진실은 드러난다.
두 코치의 주변 증언은 그 아픔을 선수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뼈아픈 현실을 웅변한다. 그들은 말한다. “이제는 이런 행태가 그라운드에서 완전히 없어져야한다.”고.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