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정엽(이동휘 분)에게 다빈(최명빈 분), 민준(이주원 분) 남매는 인생의 변곡점이다. 그는 남들만큼 착하고 남들만큼 못된, 차라리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살아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정도로,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보통의 청년이었지만 소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어린 의뢰인’(감독 장규성,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이스트드림시노펙스)은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폭력의 위기에 놓인 아이의 삶을 구하자는 메시지를 강요하는 영화는 아니다. 혹시나 주변에 아동학대에 노출돼 있을지 모를, 관심이 없어서 지나치기 쉬운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려 최악의 사태만 막아 보는 게 어떨까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
정엽은 국내 유명한 대형 로펌에 들어가 남들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 세속적인 청년이다. 친누나 미애(고수희 분)의 구박과 협박(?)에 못 이겨 로펌에 정식 합격하기 전까지 동네 복지관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맞벌이 부모를 둔 탓에 매일 같이 복지관을 찾는 다빈-민준 남매를 만난다.
누나 다빈은 같은 반 남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고 장기자랑을 선보일 정도로 밝은 아이지만, 알고 보니 엄마의 폭력과 아빠의 무관심으로 인해 내면에 상처가 많았다. 미취학 아동인 민준 역시 부모의 보호를 받기 보다 하루 종일 방치돼 있는 상태.
부모의 사랑이 고팠던 남매는 아빠처럼 대해주는 정엽을 의지하고 그가 귀찮아할 정도로 따라다닌다. 정엽은 ‘로펌에 합격하기 전까지’라는 단서를 달아 놓았기에 한정된 아량을 베푼다. 결국 아이들을 떼놓기 위해 건넨 만원 짜리 몇 장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지만.
원하던 로펌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정엽은 서울 생활에 금세 익숙해졌고 다빈 민준 남매의 존재를 잊어 버렸다. 하지만 얼마 후 다빈이 친동생을 살해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자신의 가벼운 약속 탓에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여긴 그는 다빈의 엄마 지숙(유선 분)에게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나선다.
아동학대는 비단 계모, 계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친자식에게 믿기 힘든 학대를 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접하지 않았던가. 상식적으로 친부모 가정보다 재혼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친부모가정 지키기라는 해법이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근본적 처방이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피해아동과 아동학대행위자에 대한 보호 처분 조치도 규정하고 있지만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한 특별법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물론 ‘어린 의뢰인’이라는 영화 한 편을 통해 현재 발생하는 사건들을 완벽하게 해결할 순 없을 터. 그러나 이웃에 사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처참한 희생은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걱정, 불안, 의심, 낙담, 연민, 후회, 절망 등 교차하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 이동휘와 유선의 얼굴은 아동학대의 경각심을 일으키며 방관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의 동력이 된다. / watc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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