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제72회 칸영화제 폐막식이 25일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경쟁 진출작인 한국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미안하다. 나는 상을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전설적인 감독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큰 영화적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작업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있어 가능했다. 홍경표 촬영감독 등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또한 그는 "그 많은 예술가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바른손, CJ 식구들에게 감사하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찍을 수 없었던 영화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며 영혼의 단짝 배우 송강호를 불렀다.
무대 중앙으로 온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모든 대한민국의 배우들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며 미소를 보였다.
봉준호 감독은 "가족이 2층에 있는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겠다"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이내 가족들을 발견하곤 "감사하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난 12살의 나이에 영화 감독이 되기로 마음 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면서 불어로 감사의 인사를 덧붙였다.
앞서 '기생충'은 지난 21일 오후 10분(현지시간) 2,300석 규모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식 상영됐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8분 간 기립박수가 터졌다. 은유와 블랙코미디, 한국 사회에 대한 풍자, 그리고 봉준호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더해져 수작이라는 평이 나왔다.
이후 외신들도 호평과 극찬을 쏟아냈는데, 평점에서도 다른 경쟁 작품들을 압도했다.
칸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데일리는 경쟁 부문 진출작의 최종 평점을 공개했다. '기생충'은 세계 각국 매체 기자 10인의 점수를 합산해 집계한 결과 4점 만점에 3.5점을 받았다. 3.3점을 기록하며 1위를 달리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Pain and Glory), 셀린 시아마 감독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Portrait of a Lady on Fire)'보다 0.2점 높았고, 새로운 1위에 등극했다. 이어 유럽 15개 매체의 평점을 집계하는 칸영화제 공식 소식지 '르 필름 프랑세즈'에서도 9개 매체가 '기생충'에 만점을 뜻하는 황금종려가지를 줬다. 이는 11개 매체가 황금종려가지를 부여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또, 프랑스 독립상영관협회에 따르면 '기생충'은 25일(현지시간) 이 협회에서 올해 칸영화제 기간에 맞춰 주는 1등상을 받았다. '기생충'과 함께 라지 리 감독의 '레 미제라블'이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레 미제라블' 역시 21편의 경쟁 부문 진출작 중 하나다.
폐막식 직전 진행된 레드카펫에서는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고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봉준호 감독은 "상영회를 하고 사람들의 좋은 평을 듣고, 며칠간 아주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고 밝혔고, 송강호는 "칸영화제에서 '기생충' 상영을 한 뒤 많은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휴식을 취했다. 칸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곳을 구경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미소를 지었다.
현지에서 골고루 호평이 쏟아진 '기생충'은 폐막식이 다가오면서 수상에 대한 가능성이 올라갔고, 주연 배우 송강호가 일정 변경해 폐막식까지 남기로 하는 등 기대감을 한껏 높이기도 했다.
한국 영화는 역대 칸영화제에서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처음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고, 1999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제5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송일곤 감독의 '소풍'은 같은 해 단편부문에 출품해 최초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본상에 해당하는 경쟁 부문에서는 지난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받아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 이어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02년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 2007년 '밀양'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받았다.
박찬욱의 '아가씨'(2016), 봉준호의 '옥자'(2017)와 홍상수의 '그 후'(2017), 이창동의 '버닝'(2018), 봉준호의 '기생충'(2019)이 4년 연속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지난해까지 본상은 받지 못했다. 2016년 '아가씨'는 칸영화제 기술 부문 최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 2018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을 수상했지만, 본상 부문은 아니다. '시'의 각본상 이후에는 무려 9년 동안 본상 수상이 끊겼던 상태기도 했다.
칸영화제 경쟁 진출만으로도 영광스럽고, 수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매번 폐막식에서 다른 나라의 수상을 지켜봐야만 했기에 아쉬움이 남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000상을 받으면서 9년 만에 본상 수상에 성공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2006년 감독 주간), '도쿄!'(2008년 주목할 만한 시선), '마더'(2009년 주목할 만한 시선), '옥자'(2017년 경쟁 부문), '기생충'(2019년 경쟁 부문)까지 본인의 연출작으로만 5번째 칸에 초청됐고, 이번에 처음 본상을 수상했다. 생애 첫 본상이 황금종여상이다.
한편, 지난 14일 개막한 제72회 칸영화제는 25일 폐막식을 끝으로 12일간의 영화 축제를 마무리한다. 개막작은 미국 독립영화계 거장 짐 자무쉬 감독의 '더 데드 돈트 다이'(The Dead Don't Die), 마지막 상영 작품은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더 스페셜스'다. 한국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마동석 주연의 '악인전'이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됐다. '기생충', '악인전' 외에도 한예종 출신의 연제광 감독의 '령희'가 학생 단편 경쟁 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 정다희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이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한 '움직임의 사전'이 감독주간에 각각 초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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