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 뒷 얘기부터 차기작 계획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슬로우파크에서는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인터뷰가 진행됐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제작 바른손이앤에이,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 분) 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 네 집에 발을 들이고,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이자, 넷플릭스 시리즈 '옥자' 이후 2년 만에 다시 한번 칸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지난 25일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는 역대 칸영화제에서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처음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고, 1999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제5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송일곤 감독의 '소풍'은 같은 해 단편부문에 출품해 최초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본상에 해당하는 경쟁 부문에서는 지난 2002년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2007년 '밀양'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받았다.
박찬욱의 '아가씨'(2016), 봉준호의 '옥자'(2017)와 홍상수의 '그 후'(2017), 이창동의 '버닝'(2018), 봉준호의 '기생충'(2019)이 4년 연속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지난해까지 본상은 받지 못했다. '시'의 각본상 이후에는 9년 동안 본상 수상이 끊겼지만,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에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기게 됐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2006년 감독 주간), '도쿄!'(2008년 주목할 만한 시선), '마더'(2009년 주목할 만한 시선), '옥자'(2017년 경쟁 부문), '기생충'(2019년 경쟁 부문)까지 본인의 연출작으로만 5번째 칸에 초청됐고, 이번에 처음 본상을 수상했다. 생애 첫 본상이 황금종려상이다.
수상 당일 비하인드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무슨 상을 받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뭔가 받게 돼 폐막식에 참석하라고 하더라. 매년 참석 리스트가 유출되는데, 미국 에이전트에서도 폐막식 가는 팀을 아려주더라. 거기에 타란티노 감독은 없었다. 나와 타란티노 감독의 미국 에이전시가 같다. 친한 형이고, 좋아하는 형인데 '형은 공항으로 가시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폐막식에서 아내 분과 너무 다정하게 입장하더라. '어떻게 된 거지?' 싶었다"고 밝혔다 .
지난 25일 칸영화제 폐막식에 또 다른 경쟁 진출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참석했는데, 황금종려상 발표를 앞두고 봉준호와 타란티노의 이름이 불리지 않아 "혹시 공동 수상인가?"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미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님이라서, '무슨 시상을 하러 오시는 건가?' 했는데, 본인도 후보인데 설마 시상을 할 것 같진 않더라. 작은 상부터 큰 상을 향해 발표를 하니까 모든 팀들은 허들을 넘는 기분이었다. 만약 타란티노 부부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 서스펜스가 없었을 것 같다.(웃음) 심사위원 대상을 발표했을 때, '기생충' 팀만 남으면 자연스럽게 황금종려상을 알게 되는데, 마지막에 타란티노까지 두 팀이 남아서 최후의 서스펜스가 있었다"고 고백해 웃음을 선사했다.
칸영화제 참석부터 현지에서 150여개 매체 인터뷰, 25일 황금종려상 수상, 27일 금의환향 귀국, 28일 국내 첫 언론시사회 등 강행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인천국제공항 귀국 현장에서 "충무김밥이 먹고 싶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이에 충무김밥으로 유명한 강석주 통영시장이 "봉준호 감독을 초대해 충무김밥을 대접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소셜 미디어를 안 하니까 기사를 통해 통영 시장님께 전해 달라. 너무 감사하다. 사진을 보니까 충무김밥을 먹으러 오라고 들고 계시던데, 지금 당장 가서 먹을 시간은 없지만 이 자리를 빌려 관심에 감사드린다. 그냥 무심코 한 말인데, 민망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앞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리셉션장을 들어섰을 때, 심사위원 9명이 봉준호를 둘러싸고 "이 장면을 어떻게 찍었느냐?", "미쟝셴이 너무 돋보인다" 등 질문을 쏟아냈다고.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이 결정된 만큼, '기생충'을 향한 심사위원들의 관심도 대단했다.
봉준호 감독은 "경쟁 부문에 초청된 감독들과 심사위원들은 영화제 기간 동안 접촉을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격리가 돼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셈이다. 나도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를 해봤지만, 정말 궁금한 것들이 많이 생긴다. 자신들이 황금종려상을 준 감독을 처음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더라. 붙잡고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대체 부잣집이 어디냐? 어떻게 그런 곳을 골랐느냐?'며 궁금해했다. 디카프리오와 곰이 서로 물어죽일 듯한 장면을 찍은 분이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엘르 패닝은 '기생충'에 나온 배우들의 찬사를 늘어놨다. 비록 본인은 한국어를 몰라서 서브 타이틀로 보긴 했지만, '기생충'에 나온 여배우들의 대사나 표정을 극찬했다. 표정이나 리듬감 같은 게 탄복스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은 송강호 배우를 언급하면서 아주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다고 연기를 찬양했다. 그런데 영화가 워낙 압도적으로 만장일치 황금종려상이라서 중복 수상은 할 수 없었다. 원래 영화제 규정상 황금종려상, 심사위원대상은 중복 수상이 불가능하다. 심사위원들도 이 부분을 말하면서 아쉬워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 선배님한테도 이 얘기를 전해드렸더니 '너무 기쁘고 좋고 영광이지만, '기생충'이란 영화가 남우주연상 카테고리에 가두기엔 아깝지 않느냐?'고 하시더라. 황금종려상이 기쁘다고 하셨다"며 미소를 보였다.
현재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외신들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오스카 후보 노미네이트도 거론하고 있다. 오스카는 할리우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매년 2월 열린다. 외신들은 "외국어영화상의 강력한 후보"라며 "감독상, 각본상까지 노려볼 만하다"고 분석했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관련해 뉴욕 타임즈 기사가 나왔더라. 미국 배급사 '네온'에서도 그것을 보여줬다. 미국 배급사 대표와 오래 일하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파트너다. 최근 '아이, 토냐'라는 영화를 배급하고 좋은 성과를 냈고, 나름 배급력이 있다. 사실 오스카라는 게 한국의 시상식들의 구조와는 다르다. 상을 결정하는 투표권자가 5천 명이 넘고, 가을부터 전담 부서가 예산 측정해서, 장기간 활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와 송강호 선배님 등도 오스카 투표권자라서, 매년 10월쯤 되면 집으로 개봉 하지 않는 최신 영화의 블루레이가 온다. 그걸 보고 투표를 하라는 의미다. 거기에서도 배급사나 스튜디오가 공을 들이는 작품을 DVD 포장도 멋있게 하더라. 오스카에 노미네이션 되고, 그런 과정들이 기간도 길고 규모도 크고 복잡하다. 작품도 좋아야하지만 스튜디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봉준호 감독은 "우리가 또 'SRB'에 대한 부작용이 있다. 설레발"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희망의 표현을 너무 과하게 하다보면 네티즌들은 '설레발'이라고 내정하게 채찍질 한다. 나도 뉴욕 타임즈이나 외신에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까지만 얘기하려고 한다. 실제로 작년에 투표할 때 '버닝'이 많은 부문에 올라가 있었다. 이창동 감독님의 훌륭한 작품성과 북미 평론가들의 찬사가 대단했다. 평점도 정말 높았다. '버닝'은 명백히 그 오스카 레이스에 있었지만, 아쉽게 마지막 순간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게 안 됐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버닝'이라는 작품이 가진 가치가 하락하거나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라고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은 칸이나 베를린처럼 국제영화제가 아닌 할리우드 잔치에 외국 손님을 끼워주는 그림이다. 이런 과정이 이어져서 잘 되면 기쁘고 좋고 경사지만, 안 됐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이 일이 힘들다"며 "최신작이 최고작이 되고 싶다. '점점 별로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괴롭겠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순 없고, 계속 시도해야 하고, 모험해야 한다. 잘하는 육상 선수가 20대 중반에 9초대를 찍다가, 나이들고 은퇴할 때 기록이 안 좋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나 창작은 어렵지만 더 나아지길 원한다. 관객들은 새로운 걸 보여주길 원하더라. 그래서 권하고 싶은 직업은 아니다"며 속내를 꺼내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봉준호 감독은 이미 차기작 2편에 대해 구상을 마친 상태다. 그는 "사이즈 기준으로 말하면 '마더'나 '기생충'이 내 몸에 맞는 옷 같은 느낌이다. 이런 규모의 영화가 되게 좋게 느껴졌다. 미국 프로젝트도 이 사이즈 정도로 하고 싶고, 실제로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쪽 스튜디오와 얘기하고 있는 영화가 있는데, 250억~300억 사이다. 한국에서는 공포영화 얘기를 잠깐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중심이다. 장르가 공포가 아닌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루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이 스토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 넘게 구상했는데 꼭 찍고 싶다"며 차기작도 기대케 했다.
한편, '기생충'은 오는 30일 개봉한다.
/ hsjssu@osen.co.kr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