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강호가 칸영화제 비하인드부터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뻔 했던 사연, 영화적 동지 봉준호 감독 등 다양한 얘기를 털어놨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슬로우파크에서는 영화 '기생충'의 주연 배우 송강호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제작 바른손이앤에이,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 분) 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 네 집에 발을 들이고,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송강호는 극 중 생활고 속에서도 가족애가 돈독한 전원백수 가족의 가장 기택 역을 맡았다. 직업도 대책도 없어서 아내 충숙에게 잔소리를 듣지만 늘 태평하다. 연이은 실패로 계획해봐야 될 리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아들 기우가 부잣집 과외 선생이 되자 이를 시작으로 평범하게 먹고 살 희망을 품는 캐릭터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 송강호가 4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두 사람은 2003년 '살인의 추억', 2006년 '괴물', 2013년 '설국열차' 등을 함께 작업했으며, 한국영화계 '영혼의 단짝'으로 불린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지난 25일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100년 역사에 최초의 일이다.
송강호는 '괴물'(2006년 감독 주간), '밀양'(2007년 경쟁 부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비경쟁 부문), '박쥐'(2009년 경쟁 부문)에 이어 '기생충'(2019년 경쟁 부문)까지 5번째 칸의 초청을 받아 봉준호 감독과 함께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지난 28일 국내 첫 언론시사회를 가진 송강호는 "어제가 실질적인 '기생충'의 처음 스텝이었다고 생각한다. 칸은 둘째치고 가장 중요한 분들을 모시고 첫 번째 시사회를 했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다. 물론 내일 개봉이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반응이 좋아서 기쁘다"고 밝혔다.
송강호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으나, 황금종려상 수상작에는 공동 수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상은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은 송강호 배우를 언급하면서 아주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다고 연기를 찬양했다. 그런데 영화가 워낙 압도적으로 만장일치 황금종려상이라서 중복 수상은 할 수 없었다. 원래 영화제 규정상 황금종려상, 심사위원대상은 중복 수상이 불가능하다. 심사위원들도 이 부분을 말하면서 아쉬워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송강호는 "봉 감독님께서 시상식이 끝나고 심사위원들과 뒤풀이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여기 오기 전 기사를 검색하니까, 그 내용이 바로 떠서 놀랐다. '감독님이 술이 덜 깨셨나?' 싶었다.(웃음) 이게 꼭 감춰야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봉 감독님께서 그만큼 이냐리투 심사위원장과 속 내용까지 이야기 할 정도면 '기쁜 마음에 얘기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작품이 받은 게 우리가 다 받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의 상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 밝혔다.
애초 폐막식에 불참하기로 했던 송강호는 일정을 변경해 봉준호 감독과 폐막식까지 남았다. 지금까지 송강호가 칸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땐, 반드시 본상 수상에 성공했는데(2007년 '밀양' 여우주연상 전도연, 2009년 '박쥐' 심사위원상, 2019년 '기생충' 황금종려상), 그 법칙이 '기생충'에도 이어졌다. 좋은 속설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는 "귀국 일자가 25일 오전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무 억울하더라. 비행기 시간을 보니까 칸영화제 수상 결과를 대한민국에서 제일 늦게 알게 되더라. 이상한 딜레마에 빠지게 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일정도 없길래 프로모션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귀국 날짜를 하루 늦췄고, 봉준호 감독님과 함께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밀양', '박쥐'가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때도 폐막식은 다 참가했다. 그리고 내가 가면 칸에 봉준호 감독님 혼자 남더라. 누군가 같이 있으면 축하해주고, 박수도 치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될 텐데, 다 가버리면 얼마나 외롭겠나.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남았다. 칸영화제 측의 언질을 받았거나, 자체적으로 수상에 대한 촉이 좋아서 남은 건 절대 아니다. 칸은 수상자를 호명할 때까지 누가 상을 받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상 받을 것 같으니까 남자!' 이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송강호가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 수상한다'라는 수상 요정의 전통을 이어갔다"는 말에 송강호는 "천만요정은 들어봤어도 수상요정은 처음 들어봤다.(웃음) 제작보고회 때 반신반의로 이런 전통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어진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터져버렸다"며 웃었다.
수상 당시를 떠올린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을 세게 끌어 안았는데,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 너무 벅차서 그랬다. 심사위원장이 우리 영화를 호명 했을때, 그 순간은 잊지 못하겠더라. 우리를 부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물리적으로 들리니까 그 감동이 컸다"며 미소를 보였다.
봉준호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받고 무대에 올라 수상소감을 말하다, "이 자리에 함께 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며 배우 송강호를 자신의 옆으로 불렀다. 이에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모든 대한민국의 배우들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며 벅찬 소감을 공개했다.
송강호는 "봉 감독에 대한 어떤 고마움과 이런 표현을 하고 싶었는데, 얘기가 겹치기도 하고, 그건 이미 마음으로 전해졌다. 봉 감독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은 표현 안 해도 충분히 전해지니까.(웃음) 사실 봉 감독이 정말 최고의 예우를 해줬다. 평소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원래 그런 행동이 하는 양반이 아닌데, 그렇게 해주더라. 놀라움이고, 고마움이고, 감동이었다"며 무릎을 꿇고 황금종려상을 건넨 세레모니도 언급했다.
봉준호라는 '커다란 산'이 버티고 있어서 편하게 연기했다는 송강호는 "봉 감독님한테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웃음) 봉준호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으니까, 진짜 아무 생각없이 연기해도 다 받아줄 것 같더라.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현장에 나간 건 아니지만(웃음). 약 10명의 배우들이 누구하나 소외없이 다 자기 몫을 해냈다. 작업 자체가 행복했고, 편하고, 앙상블을 맞추러 가는 것도 재밌었다. '택시운전사', '마약왕' 등 전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시대의 무게감, 진중함 이런 게 주연 배우로서 압박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봉준호 감독님 덕분에 편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최고 장점으로 '통찰력'을 꼽았다. 그는 "봉테일은 현상적인 표현이라면, 봉준호 감독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시선, 통찰력이 중요한 것 같다. 단편적인 표현보다는 누구도 갖지 못한 세상에 대한 통찰, 우리가 사는 환경에 대한 세상에 대한 비전이 있다. 봉준호라는 거장 감독이 우리의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나, 그게 가장 독보적이지 않나 싶다"며 극찬했다.
이와 함께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님의 기술적이고 테크닉 적인 면도 존중하지만, 더 존중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예술가로서 가진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통찰력과 태도다. 이런 것들이 나보다 2살 어리지만, 내가 한참을 우러러 보게 만들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그런 지점이지 않나 싶다"며 존경심과 애정을 내비쳤다.
한편, '기생충'은 오는 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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