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관오리를 처벌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민란까지 벌이며 요구해야 하는 세상. '녹두꽃'이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안 12조를 통해 조선 말, 궁핍했던 민생의 처절함을 보여줬다.
지난 31일 밤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21, 22회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수장 전봉준(최무성 분)이 관군에게 폐정개혁안을 제시하며 화약을 제안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하며 수만의 백성들과 함께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동학군은 동시에 지쳐가고 있었다. 병사가 많은 만큼 사상자도 많았고, 대부분 농부인 동학군은 보리가 익다 못해 썩어가 추수 때를 놓칠 것을 염려했다.
"백성에겐 쌀을, 탐관오리에겐 죽음을" 외치며 일어난 동학군이었으나, 왕조를 뒤집어 엎을 생각이 아니고서야 언제까지고 반란만 이어갈 수는 없었다. 더욱이 당시 조선에는 동학군을 진압하겠다는 명목으로 청군과 왜군이 들어와 있던 상황. 전봉준은 조선이 남의 나라 군대들의 전쟁터가 될 것을 염려했다.
이에 그는 송자인(한예리 분)과 백이강(조정석 분)을 사자로 삼아 관군에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바로 동학농민군의 숙원을 담은 폐정개혁안이었다.
총 12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폐정개혁안에는 혼란했던 조선 말, 백성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조, 동학도인과 관이 그간의 원한을 잊고 함께 서정에 협력한다. 2조, 탐관오리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처벌한다. 3조, 횡포한 부호를 엄히 처벌한다. 4조, 불량한 유림과 양반 징벌한다. 5조, 노비문서를 불태운다. 6조, 칠반천인의 대우를 개선한다. 7조, 청상과부의 재혼을 허가한다. 8조, 무명잡세 철폐한다. 9조, 지연을 타파해 인재를 등용한다. 10조, 일본과 통하는 자 엄벌한다. 11조, 빚을 탕감한다. 12조,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한다.
현대에는 당연할 수도 있는 조항들이 조선 말에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현실이었던 터. 앞서 백이강은 전봉준이 폐정개혁안을 작성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나"라며 한탄한 바 있다. 그러나 전봉준은 관찰사에게 이를 제안했고, 임금에게 막대한 권한을 받았던 관찰사는 동학군 해산을 조건으로 폐정개혁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전봉준은 희생된 수많은 병사의 죽음과 부상에 눈물을 머금고 관찰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김개남(김정호 분) 등 동학군 일부의 반발을 감수하고 약속된 시간, 전주성 성루에 올라 불꽃을 터트리며 관찰사에게 제안 수락의 의사를 표시했다. 동학농민군의 반란에 종식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전봉준의 폐정개혁안을 본 백이현(윤시윤 분) 또한 감탄했다. 반란이 일어나기 전 백이현은 전봉준을 만나 함께 할 것을 제안받았으나 방식이 맞지 않다"며 고사한 바 있다.
당시 백이현은 "죽창은 야만"이라며 전봉준의 뜻을 무시했다. 일본에서 신문물을 보고 접했던 백이현인 만큼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개항하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길에서 희망을 봤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전봉준은 "문명의 불빛에 현혹되지 말라. 문명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며 일본 유학에 의존하는 백이현을 경계했다. 그랬던 백이현이기에 전봉준이 폐정개혁안을 통해 많은 개혁을 이뤄내려는 모습에 충격받았고 동시에 감탄했다.
과연 동학군은 폐정개혁안을 토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실존하는 역사가 이미 결과를 말해주고 있는 상황. 그 안에서 빛을 보지 못한 폐정개혁안의 존재가 백이강과 백이현은 물론 '녹두꽃'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 monami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