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희열2' 모델 한혜진이 데뷔부터 지금까지 20년 활동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1일 오후 방송된 KBS2 토크쇼 '대화의 희열2'에서는 톱모델 한혜진이 자신의 데뷔 20주년을 돌아보는 모습이 그려졌다. MC 유희열을 필두로, 소설가 김중혁,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기자 신지혜 등이 한혜진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유희열은 "오늘 다른 날과 달리 다들 유난히 패션에 신경 쓰고 온 느낌이 있다"며 "오늘 나오시는 분을 위해 이 정도는 맞춰줬다"며 의상에 힘을 줬다. 이어 9번째 대화 상대 한혜진이 등장했고, 김중혁은 "비현실 적이다", 유희열은 "안 믿긴다"며 톱모델의 자태에 감탄했다.
유희열은 한혜진 앞에서 자신의 패션 콘셉트를 공개했고, 한혜진은 "말은 정말 잘하신다"며 박수를 쳤다.
유희열이 "한혜진이 데뷔 20주년이다. 축하해줘야 한다. 모델은 다른 직종에 비해 생명이 짧다"고 하자 한혜진은 "외형적인 조건으로 일을 해야 되는 직업이다. 패션 모델처럼 이런 직업이 없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최고 정점으로 훨훨 타 올라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한 신체와 프로포션을 갖춘다. 미친듯이 타올랐다가 나이가 들면서 산화되는 느낌을 받는 직업이 모델이다"고 밝혔다.
중학생 시절 한혜진은 "모델은 화려하고 좋고 멋있지만 내 신체적 조건이 안 된다"며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키 때문에 콤플렉스가 심해서 모델이 될 거라고 생각 못했다고 들었다"는 질문에 한혜진은 "난 그냥 키 크고 못생긴 아이였다. 학창시절에 어딜가나 머리 하나가 더 있어서 제발 작아지는 게 소원이었다. 그때 선생님보다 더 컸고, 초등학교 6학년때 이미 168cm가 넘었다"고 밝혔다.
이어 "수업 종이 끝나는 소리가 들리면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더라. 내 키를 재기 위해 남자 애들이 우리반으로 왔다. 짧은 체육복을 입고 밖에 나가는 게 죽을 정도로 싫었다. '그런 거 가지고 죽는다는 표현을 함부로 하지마라' 하실 분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광장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버스나 지하철을 못 탔고, 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부모님께 혼났다. 용돈을 받아서 전부 택시비에 다 썼다"고 말했다.
한혜진은 "키는 이미 성인을 훨씬 넘었는데 옷은 아동복을 입어서 사람들이 빤히 쳐다봤다. 그래서 늘 그게 공포였다. 비오는 날 우산 쓰는 게 그렇게 좋았다. 키가 가려져서. 그래서 지금도 비오는 날이 좋다"고 덧붙였다.
"큰 키가 자신감으로 바뀐 계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혜진은 "길거리에서 명함 같은 걸 나눠주는 걸 많이 받았다. 일명 길거리 캐스팅을 엄청 받았다. 그런 명함을 받아서 엄마한테 가면 '내가 좀 특별한 사람인가?' 싶더라. 그래서 모델 학원에 등록하고, 학원에서 원서를 쓰자고 하더라. SBS에서 하는 모델 선발대회를 나갔는데, 거기만 나가면 그걸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시작인 줄 몰랐다"며 웃었다.
이어 "1차 서류 심사를 붙었는데, 하이힐과 옷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엄마가 생활비를 모아서 비상금을 나한테 줬다. 동네 백화점에 가서 처음으로 백화점 브랜드 옷을 사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치마 정장 투피스를 사주셨는데, 지금도 눈물나는 옷이다"고 했다.
한혜진은 "모델 선발대회 예선 장소에 나 같은 사람이 몇 백 명이 있더라. 너무 벅찼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줄 알았는데 거기 나보다 큰 사람이 200명이 있어서.(웃음) 그때 깨달았다.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일 수도 있겠다'. 심지어 나보다 더 큰 사람도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마음이 안정 되더라. 일부로 홀도 왔다갔다 했다.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고 놀리지 않았다. 잘하면 이게 내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한혜진 소속사 대표가 그때 고등학생 한혜진을 보고 모델 학원에 등록하라고 매일 전화를 했다. 등록할 때까지 한 달 넘게 전화가 왔다고.
한혜진은 "대표님이 모델로 대성할 아이라고 했는데, 아빠가 왜 돈을 내고 등록을 해야 하느냐며 믿지 못하셨다. 당시 김소연 대표님이 일단 몸이 굉장히 좋다고 했다. 이전의 세대와 몸이 다르다고 얘길 하셨다. 나이가 어린데, 키가 크고, 동양인 치고 허리가 길지 않고 두상이 작다고 하더라.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다고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모델 학원에 등록하고 얼마 후 컬렉션에 서기 위해 오디션을 봐야 했다. 오전에 남자 모델 몇 백명을 보고 나면, 오후에 여자 모델들이 오디션을 봤다. 지금의 서울 컬렉션 같은 패션쇼를 세우기 위한 오디션이었다. 그때 모델 학원에 등록하고 거의 모든 서울 컬렉션에 캐스팅 됐다. 남자 쇼 무대까지 섰다"며 17살에 데뷔하게 된 과정을 공개했다.
17살에 데뷔하자마자 주목을 받은 한혜진은 "웜업이 안 된 상태에서 바로 무게를 들어올리는 운동을 하는 느낌이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고, 그땐 학생이라 학업 도중이라서 다 소화할 수 없었다. 아침 쇼가 오전 9시에 했는데, 콜타임이 새벽 4시~5시였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한혜진은 "수백, 수천 명 앞에서 속옷을 못 입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디자이너가 개인 속옷은 비치니까 절대 못 입게 한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속옷을 못 벗는다고 했다가 난리가 났다. 회사 매니저 언니가 와서 '너 미쳤어?' 그러더라. '거기가 어떤 자리인지 알아? 벗으라면 벗지 왜 그래. 너 아무도 안 쳐다본다'고 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혜진은 "하루에 수십, 수백 번을 그만두고 싶었다. 누구도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난 자랄 때도 부모님한테 한 번도 혼나거나 맞은 적이 없다. 집에서 맏이에다 혼날 짓을 안 했고, 사고도 안 쳤다. 모델 세계로 나가니까 그렇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천지더라. 맨날 혼나는 게 일이었다. 도시락 늦게 가져왔다고, 끝나고 인사 안 했다고, 선배들보다 먼저 퇴근했다고, 메이크업 두 번 받았다고, 눈썹 하나 더 붙였다고 계속 뭐라고 했다"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한혜진은 "정말 때려치고 싶었다. 그런데 무대에 딱 올라갔는데 너무 좋아서 돌겠더라. 만약에 언젠가 죽는 날이 온다면 '여기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길 어떻게 떠나?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모델의 길을 걷게 됐다고 했다.
또, 한혜진은 "겨울에는 쇼장이 엄청 춥다. S/S 시즌이 엄청 추운데 무대 중앙만 굉장히 뜨겁다. 뒤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무대에 처음 나가는데 몸이 확 따뜻해지면서 긴장이 날아갈 듯 붕 떠서 걷고 있더라. 맨 앞으로 나가서 포즈를 취하고 무대를 등지고 백스테이지로 나가는 게 너무 싫었다. 계속 걷고 싶더라. 지독하게 긴 런웨이 무대가 있는데 너무 사랑한다. 보통 15cm 하이힐을 신고 러닝머신 속도로 7.5 이상 걷는다. 그걸 5~6번 왔다 갔다하면서 옷을 계속 갈아 입으면 힘들다. 다른 선배 언니들은 힘드니까 짜증내는데, 그런데도 무대가 길어질 때마다 너무 행복했다"며 미소를 보였다.
유희열이 "그런데 런웨이가 참 짧다"고 하자 한혜진은 "그 짧음이 진짜 좋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하게 나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직업은 모델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다. 무대 위에서는 나 밖에 볼 게 없으니까. 무대에 발을 내 딛는 순간, 다른 떨림으로 뒤집혔다"며 천직임을 증명했다.
한국에서 톱모델 자리에 오른 한혜진은 해외 진출까지 성공했다. 그는 "해외는 100% 대표님 덕분에 갔다. 난 너무 싫어서 매일 피해서 도망다녔다. 연을 끊고 싶더라.(웃음) 그땐 별로 욕심이 없었다. 내가 알고보면 안주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에서 7년을 했으니베테랑이 됐고, 이미 배가 부른데 갑자기 회사에서 가난해지라고 하더라. 누가 그러고 싶겠나. 지구 반대편에서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신인으로 시작하라고 하니까. 몇 달을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가 외국을 나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2006년 뉴욕에 처음 진출한 한혜진은 "서류 봉투를 열었더니 집 키가 있었다. 비밀 번호를 누르고 올라 갔더니, 방이 3개가 있는데 문이 다 열려 있더라. 방 하나에 이층 침대가 6개씩 들어가 있더라. 알고보니 숙소였다. 사람이 많아서 화장실을 못 써서 고통스러웠고, 그걸 마음껏 쓰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2시간 먼저 일어났다"며 만만치 않았던 해외 진출기를 공개했다.
그는 "그때는 스케줄이 팩스로 왔다. 거기는 매니저 개념이 없고 중간에 스케줄 전담과 조율만 해준다. 그럼 모델 혼자 다녀야 한다. 오디션 리스트 30개가 오면 전부 다녀야 한다. 캐스팅을 많이 될수록 쇼에 갈 확률이 많아지니까, 하루 한 끼도 안 먹고, 전부 할애해서 갔다 오면 25개 정도였다. 그럼 스스로 대견해 했는데, 하루에 살이 3kg씩 쭉쭉 빠졌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해외에서 총성없는 전쟁이나 다름 없었던 살벌한 모델 셰계를 설명한 한혜진은 "가자마자 쇼를 30개 했다. 다른 사람 케이스는 잘 모르지만, 한국 패션계에서 많이 놀랐다고 하더라. 아마 기대치가 낮아서 그랬던 것 같다. 아시아 모델은 수요가 0에 가까울 정도로 거의 없다. 그래서 혜박 같은 친구는 거의 동지였다. '네가 되든 내가 되든 중국, 일본 모델들보다 일을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 컸다. 동양 모델 딱 2명 세웠는데 혜박과 나밖에 없더라. 그러면 브라보를 외치고 금메달을 2개 딴 것 같았다. 회포를 풀 땐 무조건 코리안 타운에 가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며 웃었다.
세계 4대 패션쇼에 선다는 건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한혜진은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컬렉션은 그냥 지구에서 가장 몸 좋고 가장 예쁜 여자들이 똑같은 시기에 작은 맨해튼에 다 모인다. 그 여자 애들이 일주일 동안 런던을 간다. 그러다 일주일 뒤에는 밀라노, 마지막에 파리에 간다. 전 세계 패션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4개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옷을 전 세계에서 카피한다. 그렇게 해서 유행이라는 게 만들어진다"고 했다.
해외 진출에 성공한 뒤, 4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한혜진은 "너무 외로웠다. 미친듯이 외로웠다"며 "해외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쇼도 했고, 맨해튼에서도 3~4년 살았다. 모델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한테 남은 게 뭐지?' 했더니 사람들이었다. 한국에 일 때문에 들어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갈 때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우리 아버지가 경상도 출신에 42년생 말띠인데, 그 무뚝뚝한 아버지가 공항에서 쭈그리고 앉아 날 보고 계시더라. 또, 엄마는 비행기 타려고 짐을 싸놓으면 쪽지에 편지를 써서 넣어 놨다. 그걸 보는 것도 너무 싫고, 이제 가족을 떠나지 말고 곁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돌아온 이유를 털어놨다.
모델 은퇴에 대해 한혜진은 "17살에 시작해 37살까지 모델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선배들이 현역에 있을 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요즘처럼 느낄 때가 없다. 나도 후배들한테 그런 영향을 주고 싶어서 방송 일을 하고 있지만 모델 일을 놓지 않고 있다. 그 후배들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왜 '나혼자산다'에서는 은퇴한다고 했느냐?"고 묻자 한혜진은 "내가 바닷가에서 석양를 바라보고 그 얘기를 했더라. 그것 때문에 한혜진 모델 은퇴하고 방송만 한다고 생각하시더라.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는데 되게 감정적으로 많은 복잡한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월드 레코드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왜 80살까지만 하느냐 90살까지 할 거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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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화의 희열2'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