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역시 비범했다.
3일 전파를 탄 MBC스페셜 ‘감독 봉준호’에서는 가난한 영화 감독 지망생 봉준호부터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장 봉준호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봉준호는 가난한 영화 감독 지망생이었다. 그는 옴니버스 영화 ‘지리멸렬’을 만들었는데 이를 본 박찬욱 감독은 “기발하고 엉뚱하고 창의적이고 뛰어났다. 처음 봤다. 이게 누구냐 해서 연락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음 장편 시나리오를 제안한 박찬욱. 하지만 투자 문제로 무산됐고 봉준호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제가 찍은 결혼식 테이프를 갖고 계신 분들도 많으실 거다. 신부 엄마 울 때 클로즈업 들어가고 주례사 안 끊기도록 하고 우는 하객도 담고 신랑 구 여친도 찍었다”고 말했다.
이후 봉준호는 ‘모텔 선인장’ 조감독으로 처음 장편영화 현장에 투입됐고 만화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다. 그는 “스토리 자체가 성립 안 되더라. 이런 영화를 왜 찍었을까. 나혼자 얼굴이 빨개졌다. 극장 불 켜지기 전 뛰쳐나왔다. 외롭더라. 왜 이런 걸 찍었지? 영화가 성립이 안 되더라”고 자책했다.
여주인공이었던 배두나는 “‘플란다스의 개’ 무대인사를 첫 주에 도는데 관객 수가 얼마 없더라. 객석이 비어 있더라. 잘 안 되고 있구나 싶더라”고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봉준호는 다음 작품인 ‘살인의 추억’으로 단박에 만회했다. 그는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대스타여서 캐스팅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송강호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송강호는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면 결과에 대한 통보가 있어야 하는데 거의 없고 무시당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조감독이었던 봉준호는 장문을 삐삐에 녹음해놨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같이 못한다고 하더라. 언젠가는 좋은 기회에 다시 뵙고 싶다고 정성을 다하고 예의바른 메시지를 녹음해놨더라”고 특별한 인연을 공개했다.
봉준호는 “범인이 안 잡히는 영화는 환불 소동이 벌어질 수 있다더라. 모 제작자가 가상의 범인을 누구 하나 만들어서 때려잡으며 끝내자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 작품 스태프들이 봉준호 감독에게 ‘봉테일’이란 애칭을 붙였다. 김뢰하는 “사전 단계가 정말 치밀하다. 현장에서 어떤 스태프도 허둥대는 걸 못 봤다. 그래서 봉테일 봉테일 했다”고 밝혔고 류성희 미술감독은 “스타킹에 들어가는 돌의 크기나 형태가 이미 머릿속에 다 있었다. 이 사람이 실제 이런 일을 하나 의심할 정도로 범죄 현장, 범인 심리 등을 다 궤뚫고 있어서 무서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후 ‘괴물’로 천만 감독이 된 봉준호다. 그는 “괴물 하나 없이 찍은 영화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해진 회사와 협상을 진행하다 예산 차이 때문에 결렬됐다. 그 땐 자살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해야 되나 내 자신이 사기꾼이 된 느낌이었다. 모든 샷에 감독들이 에너지를 투입해야 원하는 신이 나온다”고 밝혔다.
다음 작품은 ‘마더’. 봉준호는 “스토리 자체가 김혜자를 위해 쓴 거다. 시나리오를 거절했으면 영화 자체를 못 만들었을 것이다. 2004년 김혜자의 허락을 받고 2008년 작업에 들어갔다. 띄엄띄엄 뵈면서 말씀 드렸다. 크랭크인 때엔 이미 ‘이 영화 오늘 개봉하는 건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며 껄껄 웃었다.
김혜자는 “저 사람 천재구나. 참 끈질기구나 싶더라. 오랜만에 봤는데 배가 엄청 나왔더라. 어떻게 하려고 그래 걱정했다. 많이 먹은 거다. 그 정도로 저 사람이 진짜 힘들구나 싶었다. 몸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살인의 추억’의 김상경은 “영화가 나올 때마다 저 사람 뭐야 싶었다”고 했고 진구 역시 “와 그저 감탄”이라고 말했다. ‘설국열차’에 출연했던 틸다 스위튼은 “봉준호 감독 때문에 ‘설국열차’를 선택했다. 선택 이유는 봉준호”라고 강조했다. 그와 함께 출연했던 고아성은 “틸다 스위튼이 현장을 즐겼다. 굉장히 예민하고 다가가기 힘든 배우인데”라고 귀띔했다.
크리스 에반스는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감독을 제일 우선시 한다. 왜냐하면 감독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봉준호는 대단하다. ‘살인의 추억’ 광팬이기도 하지만 특히 ‘마더’를 재밌게 봤다. 비극적인 이야기 안에 사람의 정서가 녹아 있더라. 대단했다. 봉준호가 저를 선택했는데 제가 안 할 수 있겠나”라고 찬사를 보냈다.
동료 감독들의 칭찬도 끊임없었다. 임필성 감독은 “‘설국열차’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화가 나서 던졌다.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고 류승완 감독도 “원작을 보고 영화를 어떻게 만든다는 거지 싶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고 봉준호는 천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봉준호의 페르소나는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4편을 함께 한 송강호다. 그는 “칸에서도 위대한 배우다. 송강호는 제게 배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에너지와 관객을 휘어잡는 에너지가 무한하게 의지할 수 있는 힘으로 다가온다. 송강호 선배가 대사한다고 머릿속에 전제돼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넘치는 애정을 자랑했다.
송강호 역시 “20년 가까이 작업하다 보니 기본적인 신뢰감이나 작품에 대한 비전, 야심에 대한 존중이 있다. 함께한다는 걸 기쁘게 생각하고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최근 개봉한 ‘기생충’으로 봉준호는 칸은 물론 국내 관객들마저 단단히 매료시키고 있다. 그는 “같이 삶의 어려움에 대한 거기서 우러나오는 웃음과 공포에 대한 희비극이다. 가족들이 주인공인데 그들에게 펼쳐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기생충’을 소개했다.
송강호는 “정교하고 디테일과 구성력이 역시 봉준호다”라고 했고 최우식은 “바로 뒷장이 뭔지 너무 궁금했다”고 말했다. 조여정은 “인물간의 관계 그물이 너무 촘촘하더라”고 치켜세웠고 봉준호는 “독특하고 유니크한 상황의 연속이라 볼 수 있지만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칸 영화제에서 시사회가 끝나고 조명이 어두운 상황에서 틸다 스윈튼이 응원 차 왔다. 저랑 송강호 등을 쳐주면서 너무 재밌게 봤고 수고했다고 격려해줬다”고 자랑했다.
한 관계자는 “사람의 잠재력을 끊임없이 끌어낼 줄 아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 쓰면서 디테일을 완성하는 참 좋은 리더”라고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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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BC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