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기생충' 배우 박명훈이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점을 언급했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슬로우파크에서는 영화 '기생충' 배우 박명훈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제작 바른손이앤에이,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 분) 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 네 집에 발을 들이고,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거장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이자, 넷플릭스 시리즈 '옥자' 이후 2년 만에 다시 한번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해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박명훈은 극 중 성공한 CEO 박사장 집의 숨겨진 비밀 공간 지하 밀실에 숨어 사는 근세를 연기했다. 박사장 네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 분)의 남편인 근세는 거듭된 사업 실패로 사채 빚을 떠안게 되고, 아무도 모르게 밀실에 4년 3개월 숨어살면서 아내가 주는 음식으로 근근이 생활한다.
영화 속 근세는 '기생충'이 시작되고 1시간이 훌쩍 지나야 등장하는 인물로, 캐릭터 자체가 강력한 스포일러다. 이로 인해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홍보팀, 투자 배급사 CJ 관계자들은 박명훈 배우의 존재를 꽁꽁 숨겨야 했다. 지난달 칸영화제까지 참석했지만, 공식 포토콜, 언론 매체 인터뷰 등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박명훈은 "칸영화제에 다른 배우들과 함께 갔지만, 나혼자 니스로 자유 여행을 갔다.(웃음) 칸에 머무르면 안 될 것 같더라.(웃음) 상영 전에는 주로 있었는데, 공식 상영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니스에 갔다가 밤에는 칸에 돌아왔다. 같이 간 배우들의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쉴틈이 없었다. 나보고 다들 부럽다고 했다"며 웃었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식 상영으로 '기생충'을 본 박명훈은 "그때 깜짝 놀랐다. 보통 영화를 상영 해도 재미 없으면 야유를 보내거나 극장을 나가는 관객도 있는데, 한 명도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뮤지컬을 볼 때 한 곡 끝나면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는 것처럼, 대단한 반응이 나오더라. 팬들이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 외국 프로그래머가 20년간 칸을 왔는데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이 느껴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975년생으로 40대 중반인 박명훈은 15년 동안 대학로 연극 무대를 누비며 활동했고, 40살에 결혼을 계기로 TV, 영화 등 대중 매체에 도전하게 됐다. 독립 단편, 장편영화를 거쳐 2017년 개봉한 박석영 감독의 '재꽃'에서 열연을 펼쳤고, 이 작품을 눈여겨 본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 캐스팅 했다고.
박명훈은 "'재꽃'이 개봉했을 때, 마침 봉준호 감독님이 '옥자' 무대인사 때문에 작은 극장을 다니면서 무대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재꽃'을 보셨고, '술취한 연기의 달인'이라며 날 칭찬했다고 하시더라. 정말 감사했다. 실제로 7개월 후에 '기생충' 팀에서 연락이 왔고, 시나리오를 읽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비밀유지각서에 사인을 했다. 그런데 그때도 시나리오가 너무 궁금해서 비밀유지각서를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웃음) 너무 정신이 없어서 빨리 사인하기 바빴다. 지금은 1년이 넘어서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웃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땠느냐?"는 질문에 "이런 시나리오를 본 적이 없어서 진짜 놀랐다. '이래서 봉준호, 봉준호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내 캐릭터는 시나리오에서도 임팩트가 강했다. 부담이 됐지만, 동시에 즐겼다. '손해볼 게 없다'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연기했다"고 답했다.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까 봐 개인 SNS까지 끊었던 박명훈은 "약간 답답함이 있을 수 있지만, 더 짜릿한 기분도 느꼈다. 어제 첫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그 기분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 hsjssu@osen.co.kr
[사진] 엘아이엠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