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고자 혹은 제 생각을 강요하기 위해 책을 낸 것은 아니다.”
배우 정우성이 20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A홀에서 열린 ‘난민, 새로운 이웃의 출현’이라는 제목의 간담회에서 자신의 에세이집을 출간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유엔이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지정한 세계 난민의 날인 오늘(6월 20일)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이란 제목의 에세이 산문집을 출간했다. 지난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정우성은 올해까지 5년동안 겪은 난민 보호 활동의 기록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정우성은 이날 “제가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 활동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간의 자료를 모아서 책을 내면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라고 책을 낸 이유를 밝혔다.
앞서 2014년 11월 네팔로 첫 난민 캠프 미션을 떠났던 정우성은 이듬해인 2015년 5월, 남수단에서 수단 출신 난민과 남수단의 국내 실향민을 만났다. 1년간의 명예사절 활동 기간을 거친 그는 2015년 6월 유엔난민기구의 공식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현재 전 세계에서 25명의 친선대사가 활동하고 있다는 유엔난민기구 측의 설명이다.
정우성은 또 지난 2016년 3월 레바논에서 시리아 난민을 만났고, 2017년 6월 이라크에서 실향민과 시리아 난민들을 만났다. 2017년 12월 방글라데시에선 로힝야 난민을, 2018년 11월 지부티와 말레이시아에서 예멘 난민을 만났다. 올 5월에는 2017년 만났던 방글라데시를 재방문, 당시 인연을 맺었던 로힝야 난민들과 재회했다. 해외 난민촌을 찾겠다는 약속을 매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관리 차원을 넘어선,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보로 볼 수 있지만, 그의 진심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정우성은 “제가 난민을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사람들이 좋고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제가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이 성숙한 담론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책을 통햇도 제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감성적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도 제외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난민 문제는 전 세계의 고민거리다. 1943년 유엔구제부흥사업국(UNRRA), 1947년 국제난민기구(IRO)에 이어 1950년부터 유엔난민기구(UNHCR)가 활동 중이지만 급증하는 난민 처리에 역부족이기 때문. 현재 세계 난민은 7080만여 명. 시리아, 예멘, 남수단, 미얀마의 내전과 위기가 이어지면서 그 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에도 2만 명이 넘는 신청자가 난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난민 면접 조작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에서 난민이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정우성은 “제가 책을 낸 건 반대하는 분들에게 이해를 도모하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난민 수용에 대해 찬성하든 반대하든) 저는 어느 쪽도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다.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며 “출판사, 유엔난민기구에서 도움을 주셔서 책을 내는 게 가능했다. 제 경험을 토대로 책에 대한 얼개를 짜주셔서 책이 나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우성은 이날 국내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에 대한 옹호 발언을 했다가 악플을 받았을 때의 심경도 전했다. 올해 들어 지난해 12월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 중 2명이 처음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다. 2명은 언론인이다.
‘옹호 발언을 할 때마다 악플이 달리는데 무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무섭지는 않았지만 놀랐다. 어떠한 이유로 전달됐는지 알기 위해 댓글을 자세히 읽었다. 그 중에 덮어놓고 반대하신 분들도 계셨지만 순수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대다수 우려의 목소리는 난민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는 거였다. 제가 정확한 정보를 드리는 게 담론을 성숙하게 이끌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국내에 수용된 난민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의견을 냈다. “저도 두려운 마음은 있다. 하지만 난민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도식화 해선 안 된다고 본다. 난민 전체가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집단이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며 “난민을 우리나라 법 체제 안에서 보호하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들의 나라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개인들이 조심하고 있다.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성급한 일반화를 경계했다.
그는 과거의 한국과 난민들이 배출된 나라들의 상황에는 비슷한 점도 있다고 짚었다.
정우성은 난민 발생의 이유에 대해 “난민이 발생한 나라를 보면 제국주의로 인해 과거의 우리나라가 겪었던 아픔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어려운 시절을 국민의 힘으로 이겨냈기 때문에 난민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난민이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그러면서 “앞으로도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난민들을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굳건함과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됐기 때문.
“할 수 있다면 (친선대사를)오래 하고 싶다. 유엔난민기구에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할 것 같다. 아직 그만둬야 할 이유가 없다. 1년에 한두 번 캠프에 갈 여력도 된다.(웃음)”/ watc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