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이 '살인의 추억' 이후 16년 만에 뭉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는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주연 배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과 연출을 맡은 조철현 감독이 참석했다.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 제작 ㈜영화사, 제공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조철현 감독은 "내가 단도직입적인 것을 좋아한다. 원래 제목을 '훈민정음'으로 하려고 했는데, 작가가 이왕이면 '나랏말싸미'로 우리말로 하자고 해서 바꿨다. 서문의 첫 구절이라서 대표성도 있었고, 무엇보다 쉽고 단백해서 그렇게 정했다. 평상시 사극을 만드는데 자주 참여하면서 우리의 5천년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성취는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이라고 생각했다. 훈민정음을 영화로 만들려고 기획한 건 15년 정도 됐다"고 밝혔다.
이어 "몇 년 전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 사이에 신미 스님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두 가지 설정이 내 마음을 끌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하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이 왜 비밀 프로젝트였을까. 나라의 문자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비밀이 됐을까 싶더라. 그 비밀이라는 상황이 궁금했다. 그런데 유교 국가의 왕이 불교의 승려와 국가의 문자는 만든다면 비밀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더라. 기독교 국가에서 왕이 이슬람의 성직자와 국가의 문자를 만드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 설정을 알게 되고, 근간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단순히 한글의 창제 원리와 그 원리에 기반해 만드는 과정을 바탕으로, 그 과정에서 만난 세종대왕, 신미 스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인연들을 담았다"며 영화를 소개했다.
송강호는 극 중 '글은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한글 창제를 시작하고 맺은 임금 세종을 연기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 정신이 투철한 임금 세종은 왕권 강화를 꺼리는 신하들과의 끝없는 힘겨루기, 소갈증과 안질 등의 지병, 평생 뜻을 같이 한 반려자인 소헌왕후가 단지 왕의 아내란 이유만으로 가문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하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필생의 과업으로 선비들만이 아닌 모든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새 문자를 만들고자 한다. 유신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천한 불승인 신미와 뜻을 합쳐 한글 창제를 시작하고 맺는 캐릭터다.
송강호는 "개인적으로 세종대왕 님을 연기할 수 있다는게 벅차고 영광스럽다"며 "사극을 세 편째 찍었는데 '사도'에서 영조 역할을 하고, 역사적으로 성군인 세종대왕을 연기한다는 게 부담도 됐다. 그런데 또 이런 기회에 안 하면 언제 해보겠나 싶더라. 세종대왕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얘기들이 많지만, 한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인간적인 고뇌, 왕으로서 외로움, 고통 등은 심도 깊게 접하고 만나진 못했던 것 같았다. 결과물인 한글 창제의 위대한 업적만 생각했지 신념이나 군주로서 고뇌를 이 작품을 통해서 느꼈다. 부담도 느꼈지만, 매력적으로 와 닿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극이 주는 웅장함이 있지만 편한함도 있다. 우리 얘기, 우리 조상의 얘기는 한다는 점에서 편안함도 있다. 감독님이 오랫동안 집필을 하고, 작업을 해왔던 것 중에 '사도'도 했고, 감독님이 갖고 있는 언어의 깊이, 작업하면서 행복감도 느꼈다. 편안함 속에 막중함을 서로 공유하면서 즐거운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송강호는 이번 영화에 대해 "세종대왕은 어마어마한 성군이지만, 그분이 가진 고뇌, 군주로서 외로움, 문화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고 싶어했던 군주의 마음이 스크린 속에 곳곳에 나타나는 것 같다. 수건이 있으면 수건에 물기가 슬그머니, 그 물기가 흥건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박해일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의 세종과 함께 한글을 만드는 꼴통 스님 신미를 맡았다. 역적의 아들로 유교 조선이 금지한 불교를 진리로 받드는 스님이다. 임금에게도 무릎 꿇지 않을 정도로 반골이다. 불경을 기록한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에 능통하다. 문자 창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세종이 도와달라 말하자 한양 안에 불당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새 문자 창제에 함께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의 말씀은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세종의 신념에 공감한다. 그리고 그에게도 새 문자는 필생의 과업이 된다.
박해일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이야기이고,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이야기, 평범한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한글 창제의 과정 안에서 조력자가 스님이었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컸다. 그 호기심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출연 이유를 공개했다.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외적 변화를 줘야했다"는 질문에 박해일은 "크게 안 어울린다는 얘기는 못 들어서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답했고, 송강호는 "내가 본 두상 중에 최고였다. 아무래도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칭찬했다. 박해일은 "감사하다. 관객분들이 나중에 역할을 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갈 때 스님이 어색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최소한 절에도 가고, 스님도 지켜보는 시간을 가졌다"며 노력한 부분을 언급했다.
이어 "신미가 역적의 아들이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머리를 깎고 불교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외국 문자에 능통한 스님이었다. 산스크리트어가 정말 어려웠는데, 벼락치기로 외웠다. 쉽지 않은 인도의 고대어였다. 예전에 만주어도 해봤는데 그것보다 더 어려웠다. 거기에 중요한 감정도 넣어야해서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감독은 "삭발식도 스님들을 모시고 똑같이 했고, 그 이후로 마치 신미 스님한테 빙의 하듯이 연기했다. 나중에는 신미 스님이 박해일인지, 박해일이 신미 스님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곳에 계신 스님들이 박해일이 나보다 더 스님같다고 하더라. 그리고 박해일이 태양사에서 영화를 찍을때 산길을 매일 걸어다녔다. 일반 스태프는 차를 타고 다니는데, 중요한 장면에서 실제로 스님이 걸어 다닌 느낌을 살리려고 그랬는지 노력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전미선은 세종의 약한 모습까지 보듬으며, 한글 창제에 뜻을 보탠 품이 너른 여장부 소헌왕후로 열연했다. 세자가 아니라 삼남이었던 남편 이 도에게 명석하고 심성이 곧은 당신 같은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권했던 현명한 배우자다. 왕비가 된 대가로 친정이 역적으로 몰려 아버지가 처형당하고 어머니는 노비가 됐다. 임금인 남편조차 어찌해 줄 수 없는 그 상처를 나라가 금한 불심으로 달랜다. 세종에게 소리글자에 통달한 신미 스님을 소개해 필생의 과업인 한글 창제의 길을 터주고, 궁녀들에게 새 문자를 가르쳐 문자가 살아남을 길까지 마련한 인물이다.
전미선은 "가정 안에서는 아내인데, 아내들은 외조를 하는데 티가 안 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성품을 소원왕후가 가지고 있어서 너무 하고 싶어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단 번에 선택했다.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송강호는 "소헌왕후는 비운의 왕후였다. 세종대왕이 왕권 강화를 위해서 첫 희생자가 소헌왕후였다. 그 희생을 딛고, 왕비로서 왕을 보좌하고 한글을 창제할 때 정신적인 힘을 실어 준 분이 아닌가 싶다. 세종에게 소헌왕후는 누님 같은 분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세 배우는 한국영화의 레전드 작품 중 하나인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이후 16년 만에 재회했다. '나랏말싸미'를 찍을 땐 그만큼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송강호와 박해일은 2006년 '괴물'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 촬영이 2002년도에 했으니까 16년 만에 다시 만났다. 우리가 다시 만나니까 '나만 늙었구나' 싶더라. 둘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고, 나만 늙었다", 박해일은 "16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신없이 지나갔다. 우선 작품으로 다시 만나는 것 자체가 뜻깊고, 만났을 때 워낙 두 분 모두 깊어지고 그윽한 느낌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전미선은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해서 그때 만났던 느낌이랑 지금 만난 느낌이 똑같더라. 그래서 더 의지하고, 든든하게 받쳐주는 두 분 때문에 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이 필요 없었다. 예전에 만난 오빠, 동생 느낌이라서 편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기억에 남는 촬영 장소에 대해 송강호는 "합천 해인사에 처음 들어가서 촬영하는 영광을 누렸다. 두루두루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숭고한 시간을 경험했다. 그래서 더더욱 작품의 진중함이 우리들을 지배했다", 박해일은 "나도 해인사가 기억에 남는다. 영화 속에서 문화유산들을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다. 시나리오의 진심으로 제작진이 찾아가서 굉장히 어렵게 그 공간을 허락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배우 인생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문화 유산이라는 공간이 영화 속에서 제2의 캐릭터가 될 정도로 이 작품을 좀 더 새롭게 보여주는 지점이 될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지난 15년 동안 각종 서적과 자료 등을 찾아보면서 노력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 계기가 개인사도 있는데, 어머니가 평생 한이 글자를 모르는 것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경림이 "말을 하실 수 있겠느냐?"는 말에 감독은 "그냥 넘어가는게 좋겠다"며 눈물을 닦았다.
마지막으로 전미선은 "단어마다 너무 깊은 뜻이 있고, 백성들을 위한 글자였다. 나도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잊지 않았나 싶었다. 우리나라 말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꼈다", 박해일은 "요즘같은 스마트한 시대에 디지털한 사회 속에서 여전히 물과 공기처럼 쓰여지고 있는 한글이란 문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창제설 중에 하나지만 역사적 사실을 고증을 통해서 만들었다. 편하게 보면 흥미롭고 새로운 지점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송강호는 "개인적으로 지하 세계를 탈출해서 600년의 시간을 거슬로 올라가 위대한 인물을 만나고 왔다. 우리 역사의 지워지지 않을 인물을 같이 느끼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나랏말싸미'는 오는 7월 2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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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