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백수'로 관객을 만났던 송강호가 이번에는 세종대왕으로 변신한다.
25일 오전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는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주연 배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과 연출을 맡은 조철현 감독이 참석했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송강호는 그동안 다양한 사극에서도 열연을 펼쳤는데, '관상'에서는 천재 관상가 내경, '사도'에서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영조, 개봉을 앞둔 '나랏말싸미'에서는 성군 세종대왕을 맡았다.
송강호는 ''개인적으로 세종대왕 님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벅차고 영광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송강호는 극 중 '글은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한글 창제를 시작하고 맺은 임금 세종을 연기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 정신이 투철한 임금 세종은 왕권 강화를 꺼리는 신하들과의 끝없는 힘겨루기, 소갈증과 안질 등의 지병, 평생 뜻을 같이 한 반려자인 소헌왕후가 단지 왕의 아내란 이유만으로 가문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하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필생의 과업으로 선비들만이 아닌 모든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새 문자를 만들고자 한다. 유신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천한 불승인 신미와 뜻을 합쳐 한글 창제를 시작하고 맺는 인물이다.
그는 "사극을 세 편 정도 찍었는데 '사도'에서 영조 역할을 하고, 역사적으로 성군인 세종대왕을 연기한다는 게 부담도 됐다. 그런데 또 이런 기회에 안 하면 언제 해보겠나 싶더라. 세종대왕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얘기들이 많지만, 한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인간적인 고뇌, 왕으로서 외로움, 고통 등은 심도 깊게 접하고 만나진 못했던 것 같았다. 결과물인 한글 창제의 위대한 업적만 생각했지 신념이나 군주로서 고뇌를 이 작품을 통해서 느꼈다. 부담도 느꼈지만, 매력적으로 와 닿았다"며 출연 이유를 공개했다.
송강호는 '나랏말싸미'를 촬영하면서 한글의 귀함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했다. "한글을 쉽게 쓰고 있지만, 간단하고 쉬워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싶다. 그 위대한 작업을 해오신 분이고, 만들어 내신 분이다. 그래서 한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이어 사극 작품에 대해서 "사극이 주는 웅장함이 있지만 편안함도 있다. 우리 얘기, 우리 조상의 얘기는 한다는 점에서 편안함이 있더라. 조철현 감독님이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작업을 해왔던 것 중에 '사도'를 했고, 감독님이 갖고 있는 언어의 깊이, 작업을 하면서 행복감도 느꼈다. 편안함 속에 막중함을 서로 공유하면서 즐거운 작업을 했다"며 만족했다.
조철현 감독은 캐스팅 과정에 대해 "솔직히 내 능력은 아니다"라며 "시나리오를 구축하며 이상한 버릇을 들였다. 만 원짜리를 보면서 거기 계신 분(세종대왕)과 앉아계신 분(송강호)하고 뭔가 동화된 것 같은데, 초짜 신인 감독 영화에 출연해 줄 것인가 전혀 자신감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물론 사전 정보교환도 있었지만, 다행히 송강호 배우가 시나리오를 보고 짧은 시간 내에 한다고 해줬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송강호는 '나랏말싸미'를 통해서 성군 세종대왕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 세종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고 했다. "세종대왕은 어마어마한 성군이지만, 그분이 가진 고뇌, 군주로서 외로움, 문화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고 싶어했던 군주의 마음이 스크린 속에 곳곳에 나타나는 것 같다. 수건이 있으면 수건에 물기가 슬그머니, 그 물기가 점점 흥건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번 영화가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레전드 작품 '살인의 추억' 배우들이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등 세 배우는 2002년 개봉한 흥행작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이후 16년 만에 재회했다. 송강호와 박해일은 2006년 천만을 돌파한 '괴물'에서도 함께 작업했다.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 촬영을 2002년에 했으니까 16년 만에 다시 만났다. 우리가 다시 만나니까 '나만 늙었구나' 싶더라.(웃음) 둘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고, 나만 늙었다"며 "두 사람은 친동생, 친누나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고, 박해일은 "16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신없이 지나갔다. 우선 작품으로 다시 만나는 것 자체가 뜻깊고, 만났을 때 워낙 두 분 모두 깊어지고 그윽한 느낌이 달라졌다"며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전미선은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했는데, 그때 만났던 느낌과 지금 만난 느낌이 똑같더라. 그래서 더 의지하고, 든든하게 받쳐주는 두 분 때문에 잘할 수 있었다. 사실 말이 필요 없다. 예전에 만난 오빠, 동생 느낌이라서 편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살인의 추억', '괴물' 등 송강호, 박해일 조합이 한 번도 관객들을 실망 시킨 적이 없었던 만큼, 이번에는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기대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송강호는 180도 다른 장르와 인물인 '나랏말싸미'로 복귀, 성군 세종대왕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송강호는 "개인적으로 ('기생충'의) 지하 세계를 탈출해서 6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위대한 인물(세종대왕)을 만나고 왔다. 우리 역사의 지워지지 않을 인물을 같이 느끼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며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박해일은 "요즘같은 스마트한 시대, 디지털한 사회 속에서 여전히 물과 공기처럼 쓰여지고 있는 한글이란 문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창제설 중에 하나지만 역사적 사실을 고증을 통해 만들었다. 편하게 보면 흥미롭고 새로운 지점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며 관전포인트를 알려줬다.
한편,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 제작 (주)영화사, 제공배급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오는 7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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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