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는 재미가 없다.’
요즘 KBO 리그 주변에서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야구의 재미’ 속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그중 하나가 홈런이다.
흔히 홈런은 야구의 꽃으로 일컬어진다. 홈런 한 방으로 경기의 흐름을 단숨에 뒤집거나 끝장낼 수 있는 ‘급반전의 묘미’가 유별난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홈런 타자들이 팬의 굄을 아낌없이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극적인 맛을 KBO 리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에 토종 강타자가 사라진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이승엽의 홈런공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가 난무하던 흥겨운 야구장의 풍경이 엊그제 같은데, 그의 은퇴(2017년) 이후 강타자들이 안 보인다. 이른바 홈런 타자들의 실종은 야구장을 자못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프로야구는 1980년대 김봉연(해태 타이거즈)과 이만수(삼성 라이온즈), 김성한(해태 타이거즈) 시대를 지나 1990년대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2000년대에는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으로 상징되는 거포 계보가 이어지며 흥행몰이를 해왔다. 이승엽이 일본에 진출한 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가운데 이대호(37. 롯데 자이언츠), 김태균(37. 한화 이글스), 최형우(36. KIA 타이거즈), 박병호(33. 키움 히어로즈), 최정(32. SK 와이번스), 김재환(31. 두산 베어스) 등이 그 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최정을 제외하곤 공인구 여파와 노쇠화 등으로 이들의 퇴조가 두드러지면서 리그 전체 홈런도 급감했다.
7월 11일 현재 KBO 리그 전체 홈런은 448게임에서 644개를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1.44꼴로 이는 2018년 기록인 720게임, 1756홈런(경기당 평균 2,44개)에 한참 못 미친다. 강백호(20. kt 위즈), 나성범(30. NC 다이노스) 같은 거포 자질이 있는 선수들의 부상 이탈도 홈런 수 감소의 한 요인이 되겠다.
2019 KBO 리그 반환점을 돌아선 시점에서 리그 흥행의 저조한 원인을 다시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타자들의 시원한 한 방을 기대하는 팬들의 욕구와 갈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상은 당연히 리그의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열성 팬을 몰고 다닌 전통적인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저조한 성적, 심판판정 시비의 급증, 경기장 안팎 야구인들의 사건 사고, 보신에만 급급한 KBO와 구단들의 무신경, 안일한 태도, 무대책 등도 관중감소를 부채질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기본기를 망각한, 아니 기본기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어설픈 수비는 저질시비를 불러일으키고 관중들의 짜증과 원성을 자아낸 원흉이다. 도대체 깔끔한 경기를 보기 힘들다. 메이저리그가 눈에 익은 팬들의 눈높이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심판판정을 단적인 예로 들어보자. 올해 들어 판정시비가 유난히 잦았다. 7월 8일 시점에서 비디오판독은 438경기에서 모두 487회가 나왔다. 이는 지난해 비슷한 시점의 기록인 436게임, 465회에 비해 22회나 대폭 늘어난 수치다. 그만큼 심판 불신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판독번복률은 2018년(29.3%)보다 2019년에 26.7%로 낮아졌지만, 이 수치가 심판 오심을 덮을 만한 것은 아니다.
리그 흥행 부진의 진단과 관련, 오늘날 SK 와이번스 호성적의 토대를 닦아놓은 인물로 평가받는 민경삼 전 SK 단장의 견해는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부분이 많다.
민경삼 KBO 자문위원은 “잦은 비디오판독에 따른 경기 리듬 단절, 공인구의 여파로 인한 야구의 꽃인 홈런의 감소, 외국인 선수에 대한 몸값 제한 등 투자 확대 대신 ‘축소지향’의 KBO와 구단 행정, 지도자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는 코치들의 타성에 젖은 선수지도” 따위를 리그 흥행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꼽았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1996)에 나오는 명대사가 생각난다. “You complete me.” 선수의 열정을 끄집어내 ‘선수를 제대로 완성 시켜 줄 지도자’, 어디에 없을까.
민경삼 위원은 올해 KBO 리그는 큰 틀에서 구단마다 세대교체의 진통을 앓고 있다는 전제 아래 “인위적인 세대교체보다 ‘리모델링’이 아닌 ‘리빌딩’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팬을 위한’ 노력이 대전제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KBO 리그는 지금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더군다나 토종 거포의 실종은 그 대체자원마저 선뜻 눈에 안 띄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곧 한국야구의 미래에 대한 위기로 연결된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버린’ 팬심을 붙들어 맬 수 있는, 강한 인상을 주는 스타의 부재가 한국야구의 위기를 말해준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