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인 미모로 인해 실력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던 가수 시절,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점 때문에 연기력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배우 생활. 남규리는 늘 선입견, 편견과 싸우고 있다. 씨야로 활동할 때는 가수로서 목소리로 싸웠다면, 배우로 활동하는 지금은 연기력과 캐릭터 등으로 싸우고 있다. 남규리의 인생은 늘 도전이고, 배움이다.
남규리가 속한 씨야가 데뷔한 2000년대 중반은 R&B, 발라드 가수, 그룹이 활발히 활동하던 때였다. 대표적으로 SG워너비, 버즈, 먼데이 키즈 등이 있었고, 씨야는 SG워너비가 트레이닝과 프로듀싱을 맡은 것으로 알려지며 ‘여자 SG워너비’라고 불렸다. 데뷔 앨범임에도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점이 씨야의 인기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남규리는 씨야의 비주얼과 센터를 담당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알려졌다. 뛰어난 보컬을 가지고 있음에도 뛰어난 비주얼로 인해 실력이 상대적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씨야 활동 이후 배우로 전향한 뒤에도 남규리는 씨야 때와 비슷한 선입견과 싸우고 있다.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가 늘 붙지만, 남규리는 늘 도전하고 배움의 자세로 임하면서 그런 선입견, 편견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남규리는 씨야로 데뷔한 뒤 배우 활동까지, 순탄한 길을 걸어왔을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데뷔 후 배우로 전향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심지어 한 작품을 마치고 2~3년을 쉬었던 경우도 있었다. 작품에 대한 갈증이 컸고, 기다림에 지쳐 배우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무정도시’ 마치고 꽤 오래 쉬었어요. 중간에 소속사도 한번 바꿨어요. ‘그래, 그런거야’ 하고 또 길게 쉬었죠. 작품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컸어요. 가끔 기다림에 지쳐서 ‘내 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자신이 선택을 하는 입장이 아닌, 선택을 기다리고, 받아야 한다. 때문에 기다림은 필수다. 기다림에 지치기도 했던 남규리지만 이제는 적응했다. 오히려 기다림의 끝에 ‘운명적인 만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남규리다.
“마냥 기다린다는 건 힘들죠. 마냥 기다리기만 한 건 아니에요. 제의가 들어와서 논의를 하다가 안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럴 때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좌절해요. 작품을 많이 할 때도 ‘다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하죠. 기다림에 익숙해져야겠다 싶어요.”
“기다림이 길면 지칠 때가 분명히 있죠. 하지만 갑자기 운명처럼 올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또 ‘이 길이 내 길이 맞구나’라는 생각도 들죠. 그런 운명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물며 사람이 왔다가는 것도 기다림이잖아요.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긴 기다림 끝에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고 생각하는 남규리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내 뒤에 테리우스’를 시작으로, ‘붉은 달 푸른 해’, ‘이몽’까지, 연속해서 작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안에는 숨겨진 스토리가 있다. 남규리의 마음가짐과 행동이 운명적인 만남을 이뤄낸 것.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반대가 심했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는 하지만 남규리의 마음가짐 변화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스토리다.
“영화, 드라마 외에도 연극, 뮤지컬도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때 소속사가 있었는데 반대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후 소속사를 나와서 혼자 영화를 촬영하러 다니면서,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남는 거니까 내가 가고 싶은 방향대로 가보고자 했어요. 안 하는 것 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영화를 하고, 홍보를 하고 다니면서 ‘내 뒤에 테리우스’에 특별 출연하게 됐고, 그게 시발점이 됐어요. 그래서 신기해요. 인생이라는 여정이 길잖아요. 그 시간을 잘 보내면 행운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마음가짐을 바꾸고, 행동하고, 노력한 결과, 남규리는 세 작품을 운명적으로 연이어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남규리의 독특한 면을 볼 수 있다. 하는 작품마다 쉬운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남규리를 생각하면 철부지 막내딸 캐릭터를 많이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남규리는 쉽게 접하기 힘든 캐릭터들을 주로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붉은 달 푸른 해’ 전수영이다. 최근 종영한 ‘이몽’ 미키 역시 그 연장선이다.
“‘붉은 달 푸른 해’ 준비가 더 부담이었어요. 시청자 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이몽’ 미키는 저라는 사람과 어울릴 수 있잖아요. 하지만 ‘붉은 달 푸른 해’는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죠. 그 괴리감을 없애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사실 지상파 편성이 아니면 캐릭터 이미지와 맞게 문신도 하고 반삭발도 하려고 했어요. 로봇처럼 감정 없이 이야기를 해야하는 캐릭터라서 여러 가지로 제약이 있었죠.”
“압박, 고민이 많았던 ‘붉은 달 푸른 해’를 하고 ‘이몽’으로 가니까 신났어요. 제약이 많은 캐릭터를 하다가 많이 표현하는 캐릭터를 하니까 초반에 잡아가는 부분만 어려웠지 그 이후로는 신났어요. 특히나 지난해부터 한 드라마여서 제게는 시도였고, 터닝 포인트였어요. ‘내 뒤에 테리우스’ 때부터 색다른 캐릭터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갑자기 작품이 많이 들어오는, 꿈 같은 요즘이에요.”
남규리의 말을 듣고, 특이한 캐릭터를 선택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지 물었다. 남규리는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운명과 배움을 언급했다.
“선택이 아니에요. 그런 캐릭터들이 들어와요. 어떤 배우 분이 제게 ‘자꾸 힘든 캐릭터만 하면 그런 캐릭터만 들어온다’고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런 캐릭터를 하게 되면 더 성장하는 것 같아요. 연기라는 게 자기 만족이 힘든데, 한 분야의 장인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주어진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중은 하늘의 뜻이죠. 저에게 길이 이것 밖에 없고, 주어진 게 이것 밖에 없으면 그걸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진심이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얻는 건 분명히 생기잖아요. 그런 점을 의심하지는 않아요. 대신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제가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움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른 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인데 배움은 제 인생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해요. 선배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듣는 것도 배우는 것이고 소중하고 가치가 있잖아요. 다른 배우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는 것도 배우는 거죠. 계속 배워야 오늘을 사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배우러 어딘가에 가야만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가 관김있는 걸 더 찾아서 하는 것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노력과 더불어 엉뚱해보일 수도 있지만 유니크한 생각을 하는 것도 남규리가 배우로서의 자질을 가졌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색계’ 탕웨이의 헤어 스타일을 보고 ‘이몽’ 미키 스타일을 만들어낸 점이다. 거꾸로 뒤집어 놓은 미키마우스 헤어 스타일은 ‘누가 봐도 저건 미키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4차원까지는 아니지만 발상이 독특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제가 이성적이지 않거나 하는 건 아닌데, 독특한 시각이 있어요. 이런 게 없었다면 제가 이 직업을 못했을 것 같아요. 다르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유니크하다고 생각해요. 모험심, 호기심도 있는 편이라서 여러 캐릭터들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2008년 영화 ‘고死:피의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이몽’까지, 여러 캐릭터를 소화하며 성장하고 배운 남규리는 더 많은 캐릭터, 장르를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장르가 독특하기 보다는 분위기나 색채가 독특한 거에요. 특정 장르를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다양한 컬러의 작품들을 하고 싶어요.”
“막연히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있잖아요. 그게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데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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