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날’이 흐지부지 지나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이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날(8월 23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했던 ‘야구의 날’이 올해는 일부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의 외면 속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가물가물해졌다.
KBO는 8월 23일 경기가 열린 5개 구장에서 야구의 날 11주년을 맞이해 10개 구단별로 대표 선수 두 명씩 지명, 팬 사인회를 열었으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인 이대호(37.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 주장이자 간판타자인 김현수(31)가 행사를 외면,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KBO는 당초 이대호와 김현수를 초청 선수로 지목했지만, 이대호는 롯데 구단이 “젊은 선수들에게 팬들과의 접촉 기회를 주기로 했다”, 김현수는 “이형종이 대신 나서기로 했다”는 이유(구단측의 설명)로 행사에 불참했다. 이 사인회는 비록 조촐한 이벤트였지만 올해 들어 프로야구 관중이 현저히 줄어드는 마당에 고심 끝에 마련된 자리였음에도 솔선수범해도 모자랄 두 선수의 배척으로 그 빛이 바래고 말았다.
이대호는 명색이 10개 구단의 선수들을 앞장서 이끌어가야 할 선수협 회장의 신분이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팬과의 소통 마당을 걷어 차버린 꼴이 됐다. 평소 구단 홍보를 통한 기자들과의 인터뷰도 달갑지 않게 여겨온 김현수 역시 기꺼이 나서야 할 팬 사인회를 무시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이대호와 김현수는 병역미필자로 나섰던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수로 우승 뒤 병역 면제의 혜택을 받은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주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이들의 행위에 대해 김인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혜택을 받았으면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김인식 전 감독은 그 연장 선상에서 “요즘은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눈치를 보고 비위나 맞추려고 한다”고 비판의 화살을 날리면서 “리틀 야구 등 어린 야구선수들이 프로선수들을 흉내 내면서 색안경을 쓰고 경기에 나서는 게 현실”이라며 개탄했다. 그는 평소 자주 말했던 “어렸을 적부터 야구 이전에 인성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지론을 다시 강조했다.
한국프로야구는 2019시즌에 사상 최다 관중을 기대했으나 지난해보다 대폭 줄어 800만 명 턱걸이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관중 감소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끊임없는 선수들의 일탈 행위도 팬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 요인이다. 그 가운데 이대호나 김현수 같은 팬과의 소통 무시 행위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대호와 김현수가 ‘팬과의 소통에 항상 적극적인 김광현(31. SK 와이번스)’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위의 지적을 들어도 싸다.
프로야구선수협회는 선수의 권리만 주창하고 내세울 게 아니라 팬들과의 교감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그게 ‘프로’라는 이름을 단 선수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제아무리 거대한 뚝도 홍수가 아니라 개미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 팬을 무시하는 유명선수들의, 어찌 보면 사소하게 여겨지는 ‘제 잘난’ 행보가 야금야금 한국프로야구를 좀먹어 들어가 수습하기 어려운 불행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 안녕하십니까?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 이대호와 김현수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모습과 사인(KBO의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사인 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