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일본 프로야구를 막론하고 명선수가 명감독이 된 사례는 많다. 그렇다고 명선수 출신이 반드시 명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KBO리그만 하더라도 선수 시절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약했던 염경엽(51) SK 와이번스, 장정석(46) 키움 히어로즈, 이동욱(45) NC 다이노스 감독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선수단을 이끄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런 얘기가 실감 난다.
시나브로 2019년 한국프로야구 KBO리그도 종착역을 저만치 앞에 두고 있다. 9월 2일 현재 구단별로 남은 경기는 스무 게임 안팎. 한해 농사를 갈무리하는 시점에서 구단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감독들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올 시즌 뒤 감독을 새로 선임해야 하는 구단들은 임기가 끝나는 두산 베어스(김태형), 삼성 라이온즈(김한수), 키움 히어로즈(장정석)와 이미 성적 부진으로 시즌 도중 감독이 물러난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 등 모두 다섯 구단이다. 시즌 최종 성적표에 따라 다른 구단도 변수는 생길 수도 있다. 최소한 5개 구단 감독들이 연임되든 아니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든 간에 변화가 생길 판이다. 공필성(52), 박흥식(57) 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을 꾸려가고 있는 롯데와 KIA는 우선 대행의 정식 승격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구단들이 감독을 선임하는 경로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구단 프런트가 일차 인물 검증을 거쳐 그룹 회장이 최종 낙점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이다. 정치권의 줄타기 등 외부 입김에 따라 모기업 상층부에서 감독을 지명하거나 그룹 회장이 직간접으로 간여해 선호하는 인물을 발탁한다. 그 어떤 경우도 구단주(또는 그룹 회장)의 승인은 필연적이다. 결국 그룹 오너의 뜻이 중요한 것이다.
구단 프런트 판단과 상관없이 모기업의 전략적인 선택에 의한 대표적인 감독 선임 사례는 ‘우승에 목말라 했던’ 삼성이 해태 타이거즈의 김응룡 감독을 데려온 것과 선동렬 감독을 후임으로 승격시킨 것 등이다. 여론의 향배가 상당한 작용을 한 것은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있다.
구단들은 대개 내부 코치진과 외부 인물 가운데 적합한 지도자를 검증한 뒤 기안을 올려 재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비상시국이면 외부의 유력한 인물, 이를테면 우승을 시켰던 경력이 있는 지도자를 지목하기도 한다.
감독 자질을 평가하는 기준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참고로 소개하자면 일본의 노무라 가츠야(野村克也) 같은 이는 ‘감독의 그릇으로 인망과 도량을 우선으로 관록과 권위, 표현력, 결단력 등’을 꼽기도 했다. 감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은 그야말로 ‘감독에 따라’ 성적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 1964년 봄 세인트루이스의 베테랑 1루수 빌 화이트가 한 말이 정곡을 찔렀다. 그는 “감독은 팀 성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거야 감독 나름이죠”라고 답변했다. 감독이 어떻게 팀을 이끄느냐에 따라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야 어쨌든, 변화가 예상되는 다섯 구단 가운데 김태형(52) 감독과 장정석 키움 감독은 팀 성적만 놓고 보면 경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겠다. 더군다나 김태형 감독은 2015년에 지휘봉을 잡은 이래 두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의 빛나는 전과는 물론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올해도 포스트 시즌 진출이 확정적이다. 김현수, 민병헌, 양의지 등 핵심 전력을 해마다 FA로 내보내고도 이루어낸 성적이어서 시비를 걸 수 있는 소지가 없다. 장정석 감독도 기대 이상으로 탄탄한 전력을 구축, 우승도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 있다.
구차한 변명을 싫어하는 김한수(48) 삼성 감독은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며 사실상 마음을 내려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와 KIA는 대행의 승격이 그리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팀이 뚜렷하게 반등을 못한 상태여서 승격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들리는 얘기로는 KIA는 워낙 재야에 ‘인재’들이 즐비해 ‘호시탐탐’ 감독직을 노리는 인물들만해도 25명에 이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KIA 구단은 이번 감독 선임과 관련, ‘외압 사절’을 내걸고 어디까지나 구단이 ‘자율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겠다고는 하지만 ‘타율’을 떨쳐버릴 수 있을 지는 지켜볼 일이다.
‘명가 해태의 성골들’이 자천타천 후보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조계현(55) KIA 단장의 변신설과 더불어 김성한(61) 전 감독, 이순철(58) 해설위원, 만년 약체였던 팀을 강호로 탈바꿈시킨 장채근(55) 홍익대 감독 등이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종범(49) LG 트윈스 코치의 발탁설이다.
이종범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여론에 미칠 힘이 만만치 않은 존재인데다 코치로 프로야구 현장 경험도 쌓은 만큼 KIA 구단이 눈여겨보는 유력후보 중 한 명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의 선택도 주목된다. 바로 이승엽(43)이라는 ‘초전설적인 존재’ 때문이다. 구단 주변에선 ‘아직 때가 아니다’는 시기 상조론도 있다. 근년 들어 삼성 구단의 미흡한 지원을 감안할 때 이승엽이 중압감을 안고 ‘위험한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인 것이다. 게다가 이승엽은 아직 프로야구 지도자 경험이 없다는 것도 일차 걸림돌이다.
수요는 한정돼 있고, 공급은 넘쳐나는 게 프로야구 감독직이다. 선임 과정에서 줄대기와 일부 유력 야구인들이 구단 상층부와 특수관계를 빌미로 입김을 불어 넣거나 영향력을 행사해온 구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차라리 예전에 두산 구단이 그랬듯이 프런트가 내부의 유력후보를 놓고 투표를 하는 게 낫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