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다. 두산과 한국시리즈를 하고 싶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10월 3일 와일드카드 미디어 데이)→ “되도록 빨리 끝내서 (SK가 기다리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3차전에서 끝내도록 하겠다.”(10월 5일 준플레이오프 미디어 데이)→“2패를 했으니, 잠실 가서 총력전을 하겠다. 켈리를 앞세워 두 번 잡아서 다시 고척으로 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10월 7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다시 키움 히어로즈에 진 뒤)
류중일(56) LG 트윈스 감독은 올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뒤,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 미디어 데이, 그리고 키움과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 마친 다음 사령탑으로서 각오를 피력했다. 감독으로서 소속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기를 불어넣기 위한, 의도된 발언일 것이다.
바깥에서 볼 때, 대사를 앞두고 감독의 ‘결의’를 엿볼 수 있는 이 같은 발언은 으레 할 수 있는 정도로 치부한다. 그렇지만 자칫 상대 팀(선수들)을 자극할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된 얘기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그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긁어 부스럼’ 같은, 하지 않으니만 못한 발언이 될 수도 있다.
야구는 심리적인 경기다. 더군다나 단기전 승부는 투수전이 되기 쉽고, 큰 것 한방이나 예기치 못한 사소한 실수가 승패를 좌우하는 일이 많다. 감독의 계산된, 선수들의 의욕을 북돋우는 말 한마디에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엉뚱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의욕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올해 키움과 LG의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되돌아보자면 양 팀 선수들 모두 경솔한 플레이나 실수가 없지 않았다. 2차전에서 LG 구원투수 진해수의 느닷없는 2루 견제 실수는 치명상이 됐다. 키움 선수들은 악착같았고, LG 선수들은 집중력이 모자랐다.
과거의 사례를 들춰보면, 단기전에서 심리전의 명수는 단연 김응룡 전 해태 타이거즈 감독(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었다.
김응룡 감독은 1988년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전신)와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이번 시리즈는 한 ·일전”이라고 규정, 상대 팀을 긁었다. 재일동포 출신인 김영덕 빙그레 감독을 겨냥한 발언이었는데, 반드시 그 때문은 아니었지만 결과로는 신경전이 먹혀들어 우승했다.(4승 2패)
1989년 저팬시리즈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긴테츠 버팔로즈를 상대로 3연패 후에 4연승, 대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뒷말이 무성했다. 시리즈 직후 요미우리의 곤도 헤드코치는 “우리 팀 역전 우승의 원동력은 긴테츠측의 ‘입’ 때문”이라는 자못 의외의 풀이를 했다.
사연인즉, 3차전에서 선발로 등판, 긴테츠를 승리로 이끌었던 가토 투수가 경기 후 “자이언츠의 타선은 롯데(퍼시픽리그 최하위)보다 박력이 없다”고 기고만장해서 지껄이는 바람에 선수들이 더욱 분발, 역전 우승을 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가토는 최종 7차전에 선발로 나섰으나 무참히 얻어맞고 패전의 너울을 쓰고 말았다. 당시 요미우리의 4번 타자가 바로 현 요미우리 감독인 하라 다츠노리였다. 당시 일본의 일부 매스컴은 이를 두고‘(가토의 발언이) 야부에비(긁어 부스럼)’라고 비유했다.
아직 올해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는 끝나지 않았다. 비록 LG가 벼랑 끝에 몰려 있으나 류 감독의 ‘의욕적인 발언’이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의 발언은 ‘허공의 메아리’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