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나간 거 아냐?’ 미디어 프리뷰에서 현대자동차의 ‘더 뉴 그랜저’ 디자인이 처음 공개 됐을 때 참석자들은 반응은 갈렸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호(好)에 속한다면 ‘너무 나갔다’는 불호(不好)의 대표의견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낯이 익은 걸까? 19일 공식 출시행사에서 만난 ‘더 뉴 그랜저’에는 호감도가 눈에 띄게 높아져 있었다. ‘너무 나갔다’던 여김은 ‘나갈 만했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현대차는 ‘더 뉴 그랜저’ 출시 행사의 상당 시간을 ‘변화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성공의 상징’이었던 그랜저는 왜 그렇게 과감히 달라져야 했을까? 현대차가 주장하는 이유는 ‘성공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의 성공은 인고의 시간과 그에 따른 보상이었다. 많은 것을 인내하고 희생하며 한평생 성실하게 직장을 다닌다. 근검절약은 뼛속 깊이 밴 생활철학이다. 그렇게 한 평생을 착실하게 산 아버지들에게 ‘그랜저’는 고생의 보람이었다. 아버지들은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며 “참 치열하게 살았지만 비교적 성공한 삶”이라고 점수를 매겼다.
그런데 이 같은 성공 스토리가 요즘 젊은 세대에도 그대로 통할까? 자녀들은 “아버지 세대의 잣대로 왜 우리를 재단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랜저=성공’이라는 상징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성공에 접근하는 방식은 세대에 따라 딴판이다. ‘그랜저’라는 웅장한 이름의 자동차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급변’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세태의 변화였다.
요즘 세대들의 성공은 남들과 같이 가는 게 아니다. 때 되면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 세월과 더불어 성장하는 건 더 이상 성에 차지 않는다. 여전히 젊음이 유지되고 있을 때 ‘성공’이라는 감투를 써야 한다. 그랜저가 쌓아온 ‘성공의 상징’은 이제 ‘젊음’이라는 새로운 전제가 생겼다.
그랜저의 디자인이 풀체인지도 아닌 페이스리프트에서 왜 그렇게 크게 변했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세태가 우리를 변하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더 뉴 그랜저’는 2016년 11월 출시 된 6세대 그랜저의 부분 변경 모델이다. 그랜저의 외관 변화 요점을 현대자동차가 펴낸 설명으로 빌려 쓰면 ‘‘파라메트릭 쥬얼(Parametric Jewel)’ 패턴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LED 헤드램프, 주간주행등(DRL)이 일체형으로 구성된 전면부 디자인’이다.
전면부에서 부분 변경 전 모델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현행 신형 쏘나타의 전면부 디자인 틀과 더 닮아 있다. 종전 그랜저에 남아 있던 제네시스 디자인의 티가 온전히 사라졌다. 현대차 브랜드와 제네시스 브랜드의 디자인 분리가 비로소 이뤄진 모습이다. 어쩌면 이것이 ‘급변’을 선택한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디자인과 ‘분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마무리가 더 뉴 그랜저는 아닐까? 예전 그랜저의 웅장함은 제네시스에 넘겨주고, 현행 그랜저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나마 뒷모습은 종전 모델을 좀더 정밀하게 손질하는 선에서 멈췄다.
그런데 ‘더 뉴 그랜저’ 출시 행사장에서 현대자동차 디자인센터장 이상엽 전무는 이런 말을 했다. “낯선 공간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실내 공간을 먼저 해석했다”고 했다. 그랜저의 디자인 변화는 ‘안으로부터의 변화’라는 표현도 썼다.
그의 말은 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면서 되짚게 됐다. 외관도 변했지만 실내는 차급이 달라져 있었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소재를 썼고, 특히 색상에 공을 많이 들였다.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는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즐겨 쓰는 색상의 조합이 이뤄졌다. 고급 가죽 소재가 적용된 센터콘솔, 64색 앰비언트 무드 램프와 현대차 최초로 탑재된 터치식 공조 컨트롤러가 세련된 색감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운전자의 눈이 가장 많이 가는 계기반과 센터페시아는 최첨단 스마트기기를 보는 듯했다. 가로로 길게 뻗은 12.3인치 디스플레이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하나는 계기반(클러스터)으로, 다른 하나는 내비게이션으로 쓰였다. 현대차는 이 디스플레이에 신규 개발한 그래픽 및 사용자 인터페이스(Graphic-User-Interface)인 ‘아쿠아(AQUA) GUI’를 처음 적용했다고 소개했다. 새 GUI는 블루 컬러 라이팅을 통해 투명하고 아늑한 바다의 느낌을 재현했다. 새 GUI는 내비게이션 자동 무선 업데이트(OTA), 카카오 i 자연어 음성인식 등 최첨단 인포테인먼트 기술도 탑재 됐다.
실내가 달라져 보이는 것은 단지 치장만 바뀐 게 아니었다. 실제 전장이 4,990mm로 기존보다 60mm 늘어났는데, 늘어난 길이의 대부분이 휠베이스(축간거리)에 할애됐다. 휠베이스와 전폭이 기존 대비 각각 40mm, 10mm 늘어난 2,885mm와 1,875mm가 됐다. 넉넉한 실내공간을 먼저 확보한 뒤에 도배도 하고 가구배치도 새로 한 셈이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주로 달린 시승에서 길어진 휠베이스는 차의 주행감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반적으로는 종전 모델과 큰 차이가 없으나, 길어진 만큼 서스펜션 세팅은 좀더 단단히 조여졌다. 고급화를 부르짖었으니 실내 정숙성에도 신경을 쓴 게 확인 됐다. 시승에 나온 트림은 3,578만~4,349만원 하는 3.3 가솔린이었다.
2.5 가솔린은 3,294만~4,108만원, 2.4 하이브리드는 3,669만~4,489만원(세제혜택 후)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 일반 판매용 3.0 LPi는 3,328만~3,716만원이다.
현대차 최초로 적용된 공기청정 시스템은 미세먼지 이슈로 시끄러운 요즘에 딱 맞는 선택으로 보였다. 미세먼지 감지 센서와 마이크로 에어 필터로 구성된 공기청정 시스템은 시승 구간 내내 차마 꺼놓을 수가 없었다. 미세먼지 감지 센서는 실내 공기질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현재 차량 내 공기 오염 수준을 매우 나쁨, 나쁨, 보통, 좋음 네 단계로 알려주며, 초미세먼지(1.0~3.0㎛)를 99% 포집할 수 있는 마이크로 에어 필터가 달려 있다. 다만 이 공기청정 시스템은 차문을 내리는 순간 기능이 무력화 된다. 차문으로 덮치는 미세먼지의 습격은 막을 도리가 없다.
실내가 조용해지고 반 자율주행 기능은 한결 정밀해졌다. 라디오도 성가시고 음악도 식상해졌을 때 현대차가 자랑하는 ‘자연의 소리’를 켰다. 바닷가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 처마끝에 비 쏟아지는 소리를 골라 들었다. 속해 있는 공간을 망각할 지경이었다. ‘공간을 재디자인했다’는 설명이 곧이곧대로 들린다.
그 동안 현대자동차에서는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았다. 프리미엄을 주창하며 따로 떨어져 나간 제네시스 브랜드를 의식해서다. 그런데 ‘더 뉴 그랜저’를 출시하면서 조심스럽게 이 단어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랜저를 다시 플래그십으로 대우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제네시스와의 ‘정 떼기’는 더 뉴 그랜저로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