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들' 설민석, 환자들 위해 살다간 장기려 의사는 "진정한 영웅" [어저께TV]
OSEN 전미용 기자
발행 2020.01.20 06: 51

선녀들이 부산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을 찾았다.
지난 19일 방송된 MBC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는 장기려 의사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설민석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송해와 육중완이 선녀들과 함께 피란수도였던 부산을 찾았다. 송해는 40계단을 오르며 피란시절을 회상했다. 이어 40계단 문화관을 찾았다.  설민석은 "1.4 후퇴 때 우리 젊은 이들이 적군의 총이 아닌 배고픔과 추위로 많이 죽어갔다. 200억원을 중간에서 가로채서 군사품을 받지 못했다. 국민방위군 간부층이 착복한 것이었다. 잊지 않아야 할 역사다"라며 가슴아픈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송해는 국제 시장에 대해 묻자 "피란민들은 모두 이곳에 있었다."고 말했고 설민석은 "사실 시장이 아니었다. 이곳을 평지로 만들어 놓은 일본인들이 광복이 되자 빨리 자신의 나라로 가려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그곳에 풀어 장사를 했다. 그래서 돗데기 시장으로 불리다 나중에는 자유시장 이어 미군들이 들어오면서 인터내셔널 국제 시장으로 변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수입물품을 파는 깡통시장이 생겨나 국제시장과 함께 존재했다고 이야기했다.  유병재는 광복 후 마카오 신사가 있었다고 하던데라고 궁금해했고 송해는 중절모 쓰고 구두에 정작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피란시절 노천교실 사진을 보며 설민석은 "그 당시에 희망의 꽃봉오리"라고 전했다.
이후 송해는 선녀들과 점심을 먹으며 헤어진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딱 한 번 꿈에 나와 사라진 어머니의 이야기를 건네며 아픈 가족사를 전했다. 점심을 다 먹은 선녀들은 아미동으로 향했고 송해는 다른 스케줄로 인해 아쉽게 헤어졌다.
선녀들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찾았다. 설민석은 "이곳은 일제강점기시절 공동묘지였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피란민이 생기자 이곳에서라도 살라고 내준 거다"라고 전했다. 
이어 "묘비 위에 집을 지었다. 이에 비석마을이라 부르는 거다. 피란민들이 이렇게라도 살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곳에도 영웅이 있었다며 장기려 의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민석은 "평양에 살았던 장기려 의사는 6.25 때 월남했다. 다시 만날 줄 알고 가족들도 두고 내려왔다. 그런데 다시 만나지 못했고 장기려 의사는 병원을 세워, 없이 사는 환자들에게 '닭 두 마리'를 처방해 닭을 내주었고 돈이 없어 퇴원 못하는 환자들을 몰래 탈출 시켜줬다"라고 전했다.
이어" 정부에서 남북 이산 가족을 진행, 장기려 의사에게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고 평생을 병원 옥탑방에 살았다. 1995년 12월 25일 돌아가실 때 남은 천 만원은 자신을 간병한 간병인에게 모두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라며 설명했고 선녀들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라며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jmiyong@osen.co.kr
[사진]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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