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①에 이어) 동물에 관한 다양한 다큐멘터리는 있었지만 인간과 동물의 현실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공존'을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 현장을 진두지휘한 '휴머니멀(HUMANIMAL)'의 김현기 PD를 만나봤다.
MBC '휴머니멀(HUMANIMAL)'은 자신의 쾌락과 이권을 위해 동물을 살해하는 인간과 그들로부터 동물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MBC가 매해 연초에 선보이는 창사특집 다큐멘터리로 기획돼, 지난 6일 프롤로그로 포문을 열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지난 1년 여의 시간 동안 4개 대륙을 오가며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과 그들을 사냥하고 반대로 보호하는 인간의 모습을 추적했다. 또한 배우 박신혜, 유해진, 류승룡 등이 프레젠터로, 배우 김우빈이 내레이터로 출연했다.
촬영할 동물 선정도 신중했다. 김현기 PD는 코끼리와 사자 등 '휴머니멀'에 등장하는 동물들에 대해 "시청자들이 큰 동물을 보면 쉽게 감정이입을 하고 화면 상으로 비주얼적으로 임팩트가 큰 것도 있다"고 운을 뗐다.
특히 그는 "사자는 최상위 포식자이고 코끼리는 천적이 없는 종 최상위종이다. 그런 종들 특징이 뭐냐면 생태계 피라미드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사자가 멸종 위기 종이면 초식동물 수가 확 늘어난다. 초식동물이 먹는 풀을 너무 먹으니까 사막화가 빨라진다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상징적인 동물들을 다룰 필요가 있어서 접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휴머니멀'에 나온 대부분의 동물은 멸종 위기이거나 인간에게 대량 학살을 당하는 실정이다. 사자는 전체 서식지가 50년 전에 비해 4분의 1로 줄었고 현재 2만 마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코끼리는 UN에서 상아 유통을 공식적으로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밀렵꾼들에 의해 산 채로 얼굴이 잘리는 잔혹한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돌고래는 '전통'이라는 이유로 타이지 마을에서 바다가 피로 뒤덮일 정도로 학살당하기도 했다. 김현기 PD는 프롤로그에 등장한 코끼리 밀렵에 대해 "저희가 사전 장소 헌팅을 가고 3개월 만에 본격적인 촬영을 진행했는데 그 3개월 사이에 코끼리들이 떼죽음을 당해있었다"며 충격을 토로했다.
끔찍한 실상과 달리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김현기 PD는 "사자나 코끼리 같은 동물들은 각 나라 정부 입장에선 관광객이 보러 오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정부가 밀렵을 방지하고 보호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그런 정부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세계 최빈국이라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훼손해서 먹을 게 없어지면 사자가 민가로 내려와 가축을 해치거나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그런데 사자가 보호 대상이라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부가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못하니 밀렵이 성행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코끼리 밀렵에 대해서도 그는 "보츠와나 정부는 그나마 경제적 여력이 돼서 코끼리를 보호하고 있는데 밀렵꾼들은 바로 옆 국가인 잠비아에서 온다. 그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거다. 심지어 그 잠비아 밀렵꾼들이 잔인하게 코끼리를 사냥한다고 상아를 팔아서 뗴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은 그냥 일당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상아 수익금은 아프리카에 점조직처럼 있는 밀렵꾼 조지에서 가져간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마약을 판다면 아프리카 밀렵꾼은 상아를 파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김현기 PD는 "모든 문제가 결국 다 '돈'으로 귀결된다"며 한숨 쉬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끼리 밀렵의 이유가 상아인데 전 세계적으로 상아 유통이 금지됐다. 그런데 오히려 암시장에서 상아 가격은 올랐다"고 꼬집었다. 이어 "자본주의 사회인만큼 돈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고, 인간과 동물의 공존도 돈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그 문제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세계 최빈국들인 현실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단순하게 인간의 '선의'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건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동물이 죽으면 그다음엔 우리'라는 절박함을 느껴야 한다. 마음 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그런 동기를 부여하는 점에서 '휴머니멀'이 작용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현기 PD는 미디어 환경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동물에 대해 다룰 때 여전히 '애완동물', '반려 동물'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방송가도 많이 달라져야 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무책임하게 이색 동물 카페를 만들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을 제대로 관리하는 건 기본이고, 그 동물들이 진심으로 그런 삶을 원하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고 방송가의 성찰을 꼬집었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진정한 '공존'은 무엇일까. 김현기 PD는 "마법의 묘책이 탁 있어서, 이거 하나만 딱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없다. 예를 들어서 코끼리를 보호해서 개체가 늘어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잆다. 결국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그런 것들을 계속 조율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그 상황에 맞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 같다"고 했다.
그렇기에 '휴머니멀' 제작진에게 시청자들의 반향은 더욱 뜻깊었다. 실제 '휴머니멀' 신청 후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 SNS를 중심으로 "#동물원 수족관 안 가기" 해시태그를 다는 등의 운동이 자발적으로 벌어졌던 것. 김현기 PD는 "개인이 전부 활동가가 될 순 없다. 갑자기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이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좋지 않은 걸 알리는 것이다. 아쿠리움 같은 것도 인식을 제고하고 완전히 바꿔놓은 게 뜻깊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 그는 다큐멘터리 연출자로서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 것에 감격했다. 그는 "지금은 레거시 미디어라고도 하는데 지상파 채널이 올드 미디어가 된 상황에서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다큐멘터리는 온에어 되면서 본 방송에서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화제성을 발판 삼아 해외에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게 된다. 무엇보다 '휴머니멀' 같은 대형 다큐멘터리는 지상파 아니면 제작할 수 없다. 이런 큰 다큐멘터리가 지상파 채널의 존재 가치를 알리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저희 제작진 역시 그런 것을 염두에 뒀고, 더욱 시청자에게 가치를 알리고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프레젠터, 내레이터 분들을 섭외하기도 했다"며 박신혜, 유해진, 류승룡, 김우빈과 현지 활동가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이렇게 힘든데, 다큐멘터리만큼 '무정형'인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프로그램도 없다. 아이템 선정부터 수만, 수천 가지의 결정을 PD인 제가 하는데 힘들지만 다 해내면 이만큼 매력적인 직업도 없다"며 "교양 PD들이 그 맛을 못 잊어서 계속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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