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피쉬’=필모그래피 중 베스트”
청년, 중년, 노년을 모두 소화하는 배우. 어린 아들과 생활 연기를 펼치다가 판타지에도 완벽하게 녹아들어 보는 관객들을 더욱 황홀하게 만드는 그. 뮤지컬 ‘빅피쉬’에서 에드워드 역으로 2달간 팬들을 만나고 있는 배우 박호산의 이야기다.
뮤지컬 ‘빅피쉬’는 대니얼 월러스의 원작 소설(1998)과 팀 버튼 감독의 영화(2003)를 원작으로 한다. 아들 윌이 아버지 에드워드의 젊은 시절 경험한 모험과 로맨스를 따라가며 진실을 공감하는 이야기다. 젊은 시절부터 노년까지 에드워드의 인생을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이다.
국내에선 뮤지컬로 처음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박호산은 에드워드 역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열연을 펼치고 있다. 드라마를 잠시 떠나 무대에서 팬들을 울고 웃게 만드는 그를 OSEN이 만났다.
"7살 막내아들도 공연 보고 펑펑 울어"
박호산은 남경주, 손준호와 함께 낭만적인 허풍쟁이 에드워드를 연기하고 있다. 젊은 시절 모험가 기질이 다분한 에드워드부터 늙고 병들었지만 여전히 젊은 꿈을 꾸는 노년의 에드워드까지 모두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세 아들의 아버지이자 에드워드를 닮은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한 박호산에게 ‘빅피쉬’는 더욱 애틋한 작품이다.
“노년의 에드워드 모습은 실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가져왔어요. 실제로 우리 아버지께서 왼쪽 발을 저는 장애가 있는데도 중학교 때 전교에서 주먹짱이었다 하시더라고요(웃음). 큰아버지가 맞고 들어오면 두 살 어린 우리 아버지가 나가서 복수해줬대요. 과장이겠거니 했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놀러오셔서 ‘내가 너희 아버지 가방을 얼마나 들었는 줄 아냐’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아버지처럼 에드워드 역시 듣는 사람이 행복하고 재밌길 바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생을 재밌게 꾸미면 듣는 사람도 재밌으니까요. 사실에 기초해서 과장하는, 가부장이지만 꼰대는 아닌 인물이죠. 아버지가 공연을 보셨는데 아무 말씀 안 하고 씩 웃으시더라고요. 눈이 벌개진 채로요.”
“제 큰 아들은 쿨하게 ‘잘 봤어요’ 하더라고요. 사회초년생인데 여자 친구와 부모님을 초대해 같이 봤대요. 하마터면 상견례할 뻔했죠(웃음). 둘째는 래퍼라서 스웨그 있게 ‘좋아요’ 해줬고요. 오히려 7살 막내 아들이 제일 재밌게 본 것 같아요. 아직 어려서 객석에서 못 보고 분장실에서 모니터로 봤는데 아들이 절 보고 울더라고요. 내용을 이해하는 거냐 물으니 ‘아빠는 이제 친구들 못 만나는 거잖아요’라며 장례식 장면에서 울었답니다.”
"'수선화' 기술적으로 열창하고 싶지 않더라"
박호산은 뮤지컬 배우인 남경주와 손준호에 비해 자신의 노래 실력과 안무 소화력이 한없이 떨어진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발톱의 때’라고 표현할 정도. 하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담백하고 진솔한 그의 노래와 춤에 더 감동하고 있다. 기술적인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담아 표현한 점이 통한 것. 박호산이 계속 무대에서 꿈을 꾸는 이유다.
“홍유선 안무가와 세 작품째 하고 있는데 ‘나한텐 어려운 것 안 시킬 거야, 그리고 분명히 훌륭할 거야’라는 믿음이 있어요. 역시나 자유롭게 놀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넘버 소화는 어렵죠. 연세대 성악과 출신의 손준호와 20년 넘게 뮤지컬 해온 남경주 선배에 비하면 전 발톱의 때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연기를 극대화 시키자는 게 전략이에요. 솔직하게 하고 싶어요. 노래를 훌륭하게 해내지 못하면서 잘하는 척하지 않고 싶거든요. ‘수선화’에 바이브레이션 기술을 붙이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래야 감동이 객석에 전해진다고 믿어요. 대신 기죽지 않으려고 하죠 하하.”
“처음에 ‘빅피쉬’ 제안을 받고 ‘재밌겠다. 따뜻하겠다. 가족극으로 최고겠다. 그런데 힘들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공연하고 나면 감정적으로 후련하게 터뜨리는 부분이 많아 너무 좋아요. 행복하고 미안하고 감사하고 채워지는 감동의 눈물이 나오니까 복 받은 배역이죠. 연습 때마다 한 번도 눈물이 안 난 적이 없어요. 첫 공연부터 지금까지 전혀 다름이 없죠. 계속 찡한 장면은 찡하거든요. 생각만 해도 계속 그래요.”
"무대는 내가 숨 쉬게 해주는 수혈 밭"
연극배우로 23년간 활동한 그는 2017년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시작으로 ‘피고인’, ‘나의 아저씨’, ‘무법 변호사’, ‘손 the guest’, ‘나쁜형사’ 등에서 맹활약했다. 덕분에 인지도는 수직 상승했고 어느새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에게 무대는 고향 같은 곳이고 편하게 숨 쉬는 공간이다.
“공연에서의 대표작은 많지만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날 태어나게 해준 엄마라면 ‘나의 아저씨’가 아빠라고 생각했요. 하지만 ‘빅피쉬’가 제 필모그래피에서 베스트로 올라왔어요. 전 이 작품이 정말 좋거든요. 저랑 많이 닮았고, 아버지랑도 닮았고 땀을 많이 흘리면 되는 작품이니까요. 찬란한 슬픔이 있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라서 더 좋아요.”
“방송 연기를 할 때엔 작품 외적으로 치열한 게 많아요. 그땐 외국에 나가 사는 기분인데 무대에 오면 고향에 와서 집밥 먹으며 다짐하고 가는 기분이 들죠. 아직도 매체보다 이곳이 익숙하고 훨씬 편하고 작업방식이 좋아요. 매체 쪽에선 배우는 배우지만 여기에선 예술가일 수 있으니까요. 또 매체에서는 한번 컷하면 끝인데 여기선 매일매일 체크하고 내일 더 좋은 공연할 수 있으니 좋죠.”
“어렸을 때 꿈이 배우였는데 이뤘잖아요. 이후엔 끝나지 않고 작품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됐고, 다음엔 먹고 살 만큼 됐으면 했는데 집도 샀으니 이제 더 바랄 양심이 없어요. 지금처럼만 잘 가면, 실수하지 않고 정의롭고 올바르게 가고 싶네요. 제가 쥐띠인데 2020년 올해는 잊은 친구들을 찾아보며 좋았던 때를 돌아보는 해가 됐으면 해요. ‘빅피쉬’ 마지막 장면에 많은 사람들이 만나면서 끝나거든요. 하하.” (인터뷰 2에서 계속)
/comet568@osen.co.kr
[사진] 빅피쉬 제공, OSEN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