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내가 하는 영화가 무조건 잘 돼야 하고 드라마도 시청률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배우 김남길(41)은 말 그대로 솔직하고 유쾌했다. 웬만한 배우들이라면 아무리 과거의 생각이라도 이렇게까지 자신의 속내를 보이진 않지만, 그는 달랐다.
김남길은 내달 개봉을 앞둔 새 영화 ‘클로젯’(감독 김광빈,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 제작 영화사 월광・퍼펙트스톰필름)의 홍보를 위해 30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마련했다.
미스터리 드라마 영화 ‘클로젯’은 이사한 새집에서 딸(허율 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딸을 찾아나선 아빠(하정우 분)에게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의문의 남자(김남길 분)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다. 김남길이 퇴마사 경훈 역을 맡아 딸을 잃은 아빠 상원 역의 배우 하정우(43)와 연기 호흡을 맞춘다.
그는 이날 “제가 원래 무서운 걸 잘 못 보는데 우리 영화가 오컬트 장르 마니아들에게 무서운 건 아니다. 중간 중간 무서운 장면도 있지만. 그건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장치적 요소를 사용했다기보다, 영화적으로 필요한 요소였다”고 설명하며 “감독님과 얘기를 나눈 게 관객을 크게 놀라게 하는 장면을 만들지 말자는 거였다”고 말했다.
무서운 영화를 못 보는 탓에 한동안 출연을 고민했다는 그는 “공포 영화 제작자들이 했던 얘기 중에 ‘찍을 땐 재밌다’는 말이 기억 났다. 그래서 했는데 재미있었다. 찍으면서 저희는 내용을 다 아니까 무서운 건 없었다. 하정우 형과 얘기한 건 (우리가)과하게 놀라거나 오버스러운 표정을 짓지 말자는 거였다. (공포물을) 한다면 사실 좀 더 과감하게 하고 싶었는데 제가 잡는 입장이다보니 (바뀌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맡은 경훈 캐릭터에 대해 “무거운 장르에서 쉼표가 되길 바랐다. 원래 더 코믹하게 갈까, 싶기도 했다. 하정우 형과 붙을 때 더 가 볼까, 했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톤 안에서 너무 튀어 보일까봐 자제했다”며 “그간의 (작품들에서 진중함과) 코믹을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많았어서 이번엔 그 격차를 줄여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장르적인 것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도 한 가지 감정만 가지면 사는 것도 아니지 않나. 어떤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도 1분 1초도 빠짐없이 그 생각만 하며 살지 않는다”며 “힘들어도 그 안에서 해학 (웃음) 등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고 본다. 심각하더라도, 박장대소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실소를 보여주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김남길은 ‘이번 영화에서 애드리브를 했느냐’는 물음엔 “‘신과 함께’를 언급한 대사는 애드리브였다. 제가 했는데 현장에서 웃지도 않고 받아주시더라. 하정우 형과 그런 부분을 조절해서 감독님과 얘기를 나눴다”며 “말도 안 되는 애드리브가 더 많았다. 저와 (하)정우 형은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스타일이라서(웃음). 평소보단 얌전하게 갔다. 현장에 윤종빈 감독님이 와 있었는데 자제를 시켜줬다. 어제 영화를 처음 봤는데, 말 장난까진 아니라도 관객들이 보기에 더 웃을 수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고 밝혔다.
이에 ‘평소엔 더 수다쟁이지 않느냐’고 묻자, “저는 세상에서 말 많은 게 제일 싫다. 조용한 게 좋다(웃음)”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김남길은 지난해 '2019 S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열혈사제’를 통해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에 그는 “저는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다. 제가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다 보니까”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제 마음가짐은 굳이 비속어를 사용하자면 ‘쪽팔리지 않게 하자’는 마음이다. 어디 가서 ‘나 그런 작품했어’라는 얘기를 자신있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물론 작품이 사회적 이슈, 정치적 문제와 맞물리면 운 좋게 이슈가 돼서 확장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지 못 하면 외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요즘엔 어떤 게 정답인지 모르겠다. 만들고 나서 추후에 확장성이 생기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아쉬운 거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그러면서 “예전과 달리 이제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사람(대중)들을 만족시키는 게 최우선이지 않을까 싶다”며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성공이라는 기준 자체가 달랐다. 그래야 다음 단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성공에 대한 집착은 있지만, 책임감으로 연결된다. 내가 같이 한 스태프, 배우들에게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모두가 다음 작품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시점이 달라진 거 같다”고 가치관을 전했다.
김남길은 “제가 해보지 못 한 소재나 안 했던 장르의 캐릭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지점에서 '클로젯'의 장르가 신선했다”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밝힌 뒤 “제가 오컬트, 공포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제가 즐거워야 하는데 그런 걸 못 보니 못 할 줄 알았던 거다. 근데 장르적 신선함이 있어서 하게 됐다. 하정우 형, (윤)종빈 감독님에게 전화가 와서 ‘같이 해보자’는 얘기를 하셔서 하게 됐다. 결과적인 건 (관객들에게) 맡기자는 생각이다. 흥행의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잘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장르적인 것에 치우치지 말고 잘 만들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클로젯’은 드라마 ‘열혈사제’를 촬영하기 전에 이미 크랭크업 했다.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열혈사제’를 했다. ‘열혈사제’에서 제가 신부님이었지만 퇴마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영화를 찍고 가니 이하늬가 ‘전에 찍고 온 영화가 이런 색깔인가 보지?’라고 하더라(웃음). 영화든 드라마든 첫 촬영 땐 버벅거리기 마련이다. 근데 이하늬가 ‘공포영화인데 코믹영화를 찍고 온 거 같다’고 하더라”고 이하늬와의 대화를 전했다. 그만큼 김남길이 드라마 현장에도 잘 적응했다는 의미다.
김남길은 “저는 (무서운 것을 싫어해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무서웠던 적이 있었고 계단을 걸어올라갈 때도 일부러 흥얼거리기도 했다. 평상시 책상에 앉아 있다가 누가 발을 당기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며 “그래서 이런 영화를 할 때 기대했다. 귀신을 보면 잘 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저희도 한 번쯤 귀신을 봤으면 했다(웃음). 스태프에게 일부러 ‘(이상한 현장)봤지?’라고 묻기도 했는데 그런 적 없다고 하더라. 눈치 없이(웃음). 막상 현장에선 귀신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싸늘한 느낌을 받아 보긴 했지만”이라고 전했다.
하정우와 처음 연기 호흡을 맞춘 그는 “형이 현장에서 말 많고(웃음) 똑같다. 형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하나에 힘을 주지 않고 작품 전체에 밸런스를 준다. ‘어~괜찮아. 이 정도면 됐다’고 하더라. 제가 (테이크를) 한 번 더 가자고 했지만 '괜찮다'고 하더라. 편집 후에 붙인 걸 보니 매끄럽게 잘 흘러가더라. 장르상 매 장면마다 강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하정우 형은 그런 걸 잘 알다보니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이어 그는 “하정우 형에게 먹방의 비결을 물어본 적도 있다. 형이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된다’고 하더라. 입에 많이 넣고 소리를 크게 내라고 했다. 하하. 배가 고프다는 듯이 많이 먹으면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남길에게 여전히 흥행에 대한 갈망은 컸다. 물론 20대~30대에 느꼈던 욕심의 크기와는 다르지만.
“지금도 욕심이 많은데 그때의 욕심과 지금의 욕심은 결이 다르다. 예전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면, 이제는 내가 하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배우들끼리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돋보이기보다 남을 돋보이게 하면 작품 전체가 좋아지고 나중엔 나도 돋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보다 많이 내려 놓았다. 사실 내가 부족한 걸 고쳐 나가더라도 나의 장점은 잘 알고 있었고 자신감은 있었다. 근데 (여러 가지 장벽에) 부딪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내려놓고 그 안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찾게 됐다.”
올해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제가 드라마, 영화를 왔다 갔다 하니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이 하고 싶다. 모든 건 하면 할수록 (실력이)는다. 연기도 그렇고. 작품을 하면서 상업적으로 잘 될 걸 고른다기보다 제 나름의 명분이 있으면 출연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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