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피곤하다. 육체 피로는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늘 있는 게 아닌가(웃음). 작년 12월부터 굉장히 힘들었다.”
배우 하정우(43)가 30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난해 연말 영화 ‘백두산’(감독 김병서 이해준)을 선보임과 동시에 영화 ‘보스턴 1947’(감독 강제규)을 촬영해온 과정에 대해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굉장히 힘들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는 “촬영 중에 (다른 영화가)개봉을 하면 몸이 힘든 것보다 긴장감이 배가 된다”며 “홍보와 촬영을 겸한 데다 거기에 (개봉할) '클로젯'까지 있었으니까. 이번 겨울엔 처음 경험하는 패턴이었다. 해외 촬영이 3주나 끼어있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012년 ‘범죄와의 전쟁’(감독 윤종빈), ’러브픽션’(감독 전계수)을 한 달 차이로 선보였던 그는 “두 편이 연달아 개봉했었는데 그땐 새 영화의 촬영을 안 했었으니까. (피로가 덜했다) 이번에는 호주 맬버른에서도 힘들어서 요즘에 비타민C에, 마그네슘까지 챙겨 먹는다(웃음)”는 근황을 전했다. 그는 호주에서 ‘보스턴 1947’의 막바지 촬영을 마치고 설 전날(24일) 귀국했다.
그가 제작자로도 참여한 새 영화 ‘클로젯’(감독 김광빈,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 제 영화사 월광・퍼펙트스톰필름)은 이사한 새집에서 딸(허율 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딸을 찾아나선 상원(하정우 분)에게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퇴마사 경훈(김남길 분)이 찾아오며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다.
하정우는 “오랜만에 (개그감이 없는) 연기를 해서 그런지 촬영 당시엔 하면서도 신선했다. (재미있는 부분은)김남길에게 몰아주고 싶었다”며 “애드리브를 하기도 했는데, (‘신과 함께’를 언급한 대사는) 리딩을 하면서도 생각했었다. 그게 나오면 장르에 대해 좀 더 확실해지고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약간 판타지 영화로 변했는데 단순 미스터리 호러보다 오컬트, 판타지까지 뻗어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웃기려는 생각은 아니었다”고 짚었다.
제작자로서 작품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느냐는 물음에 “그건 감독님의 몫이다. 제가 제작자지만 감독의 몫까지 건드릴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호러 미스터리물은 시각적인 것보다 사운드(효과)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모든 제작진이 얘기하길 ‘이 영화는 사운드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는 말을 했었다”고 전했다.
하정우는 이번 영화에서 딸 이나(허율 분)를 키우는 기러기 아빠 역을 맡았다. “딸 역할을 맡은 허율은 마냥 귀여웠다. 제가 ‘허삼관’을 할 때 아역배우만 전문으로 코칭하는 분을 알아서 김광빈 감독님에게 소개했다. 촬영하기 2달 전부터 아역배우가 코치님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캐릭터 연기로 인한)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서 누구도 아이와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 했고, 코치님을 통해서 얘기를 나눴다. 허율은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 역할을 따냈다. 저도 같이 오디션, 최종 미팅에 참여했는데 연기력이 독보적이었다”고 칭찬했다.
하정우는 자신이 소화한 상원 캐릭터를 이해하고 표현한 과정을 전했다. "육아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다. 출장도 많았고. 모든 걸 아내에게 맡겼었는데 그래서 자신이 홀로 딸을 대하는 게 어색하다. 일상에서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리숙한 사람”이라고 정의내렸다.
그러면서 “(상원도)나름의 노력을 하는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물질적인 것 밖에 없다. 장난감을 사주는 것 등등. 초보 아빠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에 딸이 사라진다. 경훈(김남길 분)의 대사 중 ‘딸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냐?’고 묻는 게 있는데, 그 장면에서 (상원이)속내를 이야기 한다”고 전했다.
미혼인 하정우는 “저도 자식이 없고 결혼을 안 한 상황에서 (상원처럼) 어색한 건 마찬가지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친근함을 표현하기보다 거리감이 있고 어색하게 가야겠다 싶었다"라며 “감독님과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힌트를 얻었는데, 감독님의 가족이 미국에 살고 (감독님은)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근데 가족들이 만나면 그렇게 어색했다고 하더라. 그들이 얘기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었던 거 같다”고 밝혔다.
많은 배우들은 같이 출연하는 상대 배우들보다 돋보이고, 자신의 캐릭터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는데, 하정우는 그보다 큰 그림에 중점을 두는 스타일이다. 김남길(41)도 하정우를 놓고 ‘밸런스를 아는 배우’라고 칭찬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에 하정우는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춰서 가려고 한다. ‘백두산’도 마찬가지였다. 앞에서 이끄는 배우가 있고 (극의)중간에 들어와서 조금 더 돋보이는 배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클로젯’은 ‘백두산’과 비슷한 개념이었다”며 “처음에 등장해 이끌어가는 주연이 여백을 만들어 놓아야 중간에 들어오는 캐릭터에게도 좋다. 나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내서 잘 보이려고 하면 밸런스가 깨진다. 공간을 많이 열어 놓은 상태에서 끌고 나가려는 생각을 한다”는 지향점을 밝혔다.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 2008)를 시작으로 흥행 가도를 달려온 하정우. 그에게 ‘흥행’이란 어떤 의미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은 들지만 어려운 거다. (작품은) 개인적인 결실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관계가 있는 거다. 투자자들이 저의 이름을 보고 투자하지 않나. 물론 감독님도 영향을 미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맨 앞에 있는 주연 배우들을 보고 투자한다. 저는 (개봉을 앞두고 매번)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책임감이 많이 든다. 단순히 배우가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서 연기력을 뽐내는 것 이상으로 팀 전체를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하정우는 “흥행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 하나에 치우칠 수가 없다. 둘 다 잡을 수 없는 건가?(웃음)”라며 “물론 내 예산으로 직접 찍는다면 (작품성에 중점을 둔)좋은 작품을 만들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이 예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감독이) 좋은 평가를 받을 거야,라는 예상을 하고 만드는 경우도 드물다. (나중에 평가 받는 거지.) 스티븐 스필버그 정도돼야, 작가들도 60명 이상 갖춰야 (둘 다 챙길)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배우로서 매번 현실적인 생각을 한다. 하면 할수록 좋은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기준치가 높아지고 있다. 저는 (여러 가지 장애나 높아진 기준을) 어떻게 극복하고 더 재미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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