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같은 곳에서라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모여 살고 싶었던 청년 준석(이제훈 분). 지옥 같은 교도소에서 몇 년을 참고 버틴 그는 마중 나온 절친 장호(안재홍 분), 기훈(최우식 분)에게 잘 살아보기 위한 플랜을 밝힌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남은 인생이 달렸기에 치열하게 범행을 준비하던 준석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정보통 상수(박정민 분)의 도움을 받아 돈을 털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세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의문의 남자 한(박해수 분)이 나타나면서 5분 내 완료될 예정이던 작전은 악몽으로 변질된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 제작 싸이더스, 배급 리틀빅픽처스)은 경제 붕괴로 망가진 미래의 한국사회에서 탈출을 꿈꾸는 청년 4인방의 비행을 담았다. 노력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강도질.
도심에 짙게 낀 안개 속에 어두커니 서서 퀭한 기운을 내뿜는 건물들은 불안한 미래를 품고 있는 청춘의 처지를 은유한다. 꿈 속에서도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준석의 모습도 마찬가지. 곳곳에 불안한 청춘을 가리키는 메타포가 숨겨져 있다.
‘사냥의 시간’은 총기 휴대가 가능하고, 거리낌 없이 총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담았다는 점에서 일종의 갱스터영화로 볼 수 있다. 물건을 훔치고 총으로 사람을 쏘는 범죄 자체보다 범죄 행위의 메시지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 한국인들이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설정도 갱스터 영화임을 뒷받침한다. 또한 준석을 중심으로 양 옆의 친구 장호와 기훈, 그리고 상수, 무서운 저격수 한 캐릭터가 배치됐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준석의 소박하지 않은 계획은 이기적인 개인과 공동의 윤리 사이에서 발생했다.
윤성현 감독은 인물의 고립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어두운 복도에 그림자 하나만 생길 정도로 캄캄하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붉은 조명과 소름끼치는 배경 음악은 보는 이들의 심리를 압박하고, 스릴감을 배가한다.
스타일리시하고 재기발랄한, 독특한 장르적 구사는 윤성현 감독만의 패기가 돋보인다. 앞으로의 작품들이 기대될 정도. ‘파수꾼’(2011)과 다른 장르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만 4인방을 끈질기게 쫓는 한 캐릭터의 동기가 작위적이고 엉성하다. 목적을 금세 달성할 수 있음에도 왜 그렇게 무섭게 쫓아다니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얼개의 허술함을 희석할 장르적 쾌감은 충분히 갖췄다.
이제훈과 박정민, 안재홍, 최우식 등 케미스트리가 좋은 배우들의 조화는 보기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러닝타임 134분. 넷플릭스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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